오는 7월 GS리테일과 온·오프 통합...부진한 스타트업 투자 회수 결단
[더파워=이지웅 기자]
'셰프의 킥(kick)'이라는 표현이 있다. 요리를 한순간에 특별하게 하는 셰프의 결정적 한 수, 즉 '묘수'를 의미한다. 최근 소비 환경이 달라지면서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유통기업들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저마다 킥을 선보이고 있다. 더파워뉴스는 치열한 생존전략에 몰두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통기업의 킥을 살펴봤다.
홈쇼핑은 유통업계 대표적인 코로나19 수혜주다. 지난해 주요 홈쇼핑 4사 모두 매출과 영업이익이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TV 시청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홈쇼핑사가 운영하는 온라인몰 역시 코로나19 영향으로 고성장 중인 이커머스 시장의 영향을 받아 전반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홈쇼핑 업계 1위 GS홈쇼핑은 지난해 취급액 4조4988억원을 달성하며 선두 자리를 지켜냈다. 전년 대비 5.1% 증가한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홈쇼핑 업계는 매출이 아닌 취급액을 기준으로 외형순위를 결정한다.
올해는 특히 GS홈쇼핑의 활약이 기대된다. 오는 7월 GS리테일과의 합병이 예정돼 있어서다. 합병이 성사되면 자산 9조원, 연간 취급액 15조원, 하루 거래 600만건에 이르는 초대형 온·오프라인 겸업 단일 유통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국내 유통 판을 뒤흔들 ‘신(新)유통 공룡’의 성공적인 탄생을 위해 김호성 GS홈쇼핑 대표는 현재 합병을 위한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김 대표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최측근이자, GS홈쇼핑의 강점인 모바일 커머스 역량을 강화시킨 숨은 공신이다. 허 회장과 고려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김 대표는 첫 직장인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허 회장과 함께 일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16년 동안 증권업계에서 일하다 유통업계로 발을 들이게 된 것도 허 회장의 러브콜 덕분이었다. 김 대표는 2003년 GS홈쇼핑 기획심사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경영지원부문장, 영업본부장, 영업총괄 부사장을 역임하고 2020년 1월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취임 이후 김 대표는 12년간 GS홈쇼핑을 이끌어온 허 회장의 주력 사업 개선과 오프라인 유통에 강점을 가진 GS리테일과의 시너지를 위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높였다.
'벤처투자' 포트폴리오 재정비... 기존 스타트업과 시너지 집중
허 회장과 같은 '증권맨' 출신인 김 대표는 GS홈쇼핑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벤처투자 포트폴리오 재정비에 나섰다. 기대만큼 큰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줄곧 추진해온 해외 홈쇼핑 사업이 실패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어 벤처투자 사업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앞서 GS홈쇼핑은 2011년부터 벤처투자를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찾고자 했다. 당시 허 회장은 신사업전략그룹에 CVC(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를 만들어 GS홈쇼핑의 벤처투자를 맡겼다. 회사의 신사업과 엮을 신기술 확보와 유망 기업 투자 및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GS홈쇼핑이 직·간접 투자한 국내외 벤처·스타트업 수는 800여개가 넘는다. 총 투자 잔액은 4600억원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밀키트(반조리 간편식) 1위 업체 '프레시지', 식품 비디오 커머스 '쿠캣', 반려동물용품 쇼핑몰 '펫프렌즈' 등이 있다.
하지만 GS홈쇼핑은 벤처투자에서 피부에 확 와닿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단순히 기술 확보와 협력 관계 구축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추후 엑시트(Exit)를 통한 이익 회수가 중요한데, GS홈쇼핑 투자 생태계에 있는 스타트업 대부분이 규모가 작은 데다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자금 회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GS홈쇼핑은 앞으로도 벤처투자를 지속 확대할 계획인 만큼 신중한 투자가 필요했다.
김 대표는 GS홈쇼핑의 적극적인 벤처투자 행보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스타트업과 시너지를 내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인 시너지 창출 사례는 프레시지와의 협업이다. GS홈쇼핑은 프레시지와 '바다향 가득 통꼬막장', '한입쏙 양념갈비', '사천 마라탕·마라샹궈' 등 콜라보 상품을 꾸준히 TV 홈쇼핑에 론칭했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인해 HMR(가정간편식)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또 지난해 여름 먹방으로 유명세를 탄 '송주 불냉면'을 쿠캣과 협업해 판매했다. 먹방, 레시피·맛집 소개 등 모바일 콘텐츠를 제작하는 쿠캣이 SNS 마케팅을 맡고, GS홈쇼핑이 TV 홈쇼핑에서 제품을 판매했다.
GS홈쇼핑은 전문가 집단인 'CoE(Center of Excellency)' 팀을 별도로 구성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지원에도 나섰다. 사업개발, IT, 마케팅, UX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스타트업을 밀착 관리해 업무지원, 판로개척 등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그 예로 반려동물 스타트업 펫프렌즈는 사업 초기 앱 리뉴얼 작업에 UX·UI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GS홈쇼핑으로부터 3차 투자를 받은 펫프렌즈는 새벽배송 사업도 시작했으며 펫시터, 미용, 도그워킹 등 반려동물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김 대표는 거듭 부진을 겪는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회수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GS홈쇼핑은 3년간 투자해온 간편결제 서비스 기업 NHN페이코 지분 절반을 매각했다. 앞서 GS홈쇼핑은 2017년 NHN페이코 지분 9.52%를 확보하는 데 총 500억원을 투입했다. 점점 치열해질 모바일 상거래 시장에서 NHN페이코가 가진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통해 마케팅 역량 강화를 꾀하고자 했다.
하지만 GS홈쇼핑의 기대만큼 NHN페이코의 역량은 높지 않았고,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결국 지분 일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업계에 따르면, GS홈쇼핑은 NHN페이코 보유지분 절반을 정리해 약 300억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투자한 금액에서 약 50억원의 수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GS홈쇼핑 '디지털 전환' 선도... 올해도 이어간다
지금까지 GS홈쇼핑은 벤처투자를 바탕으로 유통을 넘어 IT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 변화를 시도해 왔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유통환경이 급변하면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DT)'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중이다.
앞서 작년 6월 허 회장은 'GS 임원 포럼'에서 DT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유통 분야는 모바일과 온라인 의존도가 급격히 커지는 변화 속에 있다"며 "다양한 디지털 툴을 비롯한 협업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새 업무 환경과 유연한 조직문화 변화를 이끌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GS홈쇼핑은 일찌감치 온라인 쇼핑 시장을 주목해왔다. 2007년 디앤샵을 인수한 이후 본격적으로 모바일 쇼핑을 공략했다. 이후 2014년 '모바일 퍼스트' 전략을 내세우며 애플리케이션(앱) 등 모바일 강화에 주력했다.
GS홈쇼핑의 DT 중심에는 김 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GS홈쇼핑의 TV홈쇼핑사업에서 디지털 전환을 통해 모바일 커머스로 빠르게 넘어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데이터 기반 상품 개발, 방송과 모바일 쇼핑이 결합된 크로스채널 마케팅을 도입해 큰 성과를 낸 바 있다. 크로스채널 마케팅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상품을 TV 홈쇼핑에서 판매해 온라인 고객을 TV 홈쇼핑으로 유도하는 마케팅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송주 불냉면 등이 있다.
이같이 채널 간 경계를 허문 마케팅을 강화한 결과, 2013년 30% 초반에 불과했던 인터넷·모바일 취급고 비중은 현재 60%를 넘어서며 TV 홈쇼핑 비중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다.
지난해에도 GS홈쇼핑은 DT에 한 발 성큼 내디뎠다. 작년 말 블록체인 기반 공급망 플랫폼 개발사 템코와 손잡고 QR코드로 상품 정보와 배송 이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QR코드 서비스는 GS홈쇼핑이 2018년 말부터 진행한 'DT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상품에 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되고, 이를 구매자가 QR코드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위변조가 불가능해 상품에 대한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QR코드 서비스가 처음으로 적용된 상품은 '산지애 사과'다. 경북 청송군 농가에서 수확된 사과의 입고, 선별, 보관, 출고까지의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려 농가, 생산자, 유통사, 소비자 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올해 김 대표는 GS홈쇼핑과 GS리테일의 합병이라는 굵직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번 합병은 온라인(GS홈쇼핑)과 오프라인(GS리테일)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GS홈쇼핑은 약 3400만가구에 달하는 TV 홈쇼핑 시청 가구와 3300만명 이상이 다운로드 한 모바일 쇼핑 앱을 운영 중이다. GS리테일은 전국 1만5000개 이상의 점포망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의 시너지를 위해 김 대표는 올해도 DT를 가속화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고객, 상품, 물류 데이터와 기술, 인력, 인프라 등 디지털 소스들을 결합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할 방침이다. 모바일 등 네트워크 기술 진화로 시공간 제약 축소와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이번 합병을 통해 온·오프라인 시장을 통합하고, 풀필먼트, 라스트마일 등 배송 서비스를 개발해 시너지를 더욱 높일 예정이다.
김 대표는 "GS홈쇼핑은 창립 이후 25년 동안 TV 홈쇼핑 시장의 개척, 멀티미디어 쇼핑 대중화, 모바일 커머스로 전환, 디지털 역량 강화 등 변신을 거듭해왔다"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혁신을 지속하는 GS홈쇼핑 임직원의 DNA가 더 큰 터전 위에서 크게 뻗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 체제가 시작된 지 어느덧 1년여가 흘렀다. GS홈쇼핑은 코로나19에도 순항하며 역대 최대 실적이라는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모바일,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둔 덕분이다.
지난해 GS홈쇼핑은 매출 1조2067억원, 영업이익 1579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각각 1%, 31.5%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2.1% 증가한 1302억원을 기록했다.
이지웅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