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三)층 분석]은 독자들에게 '일층'부터 '삼층'까지 층별로 계단을 올라가듯 화제의 웹툰 작품을 심층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일부 작품 이야기 전개가 노출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드라마 영화의 흥행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화려한 볼거리가 흥행 원동력이 된다. '믿고 보는 배우'를 통해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도 한다. 감독의 명성도 중요한 요소다. 이미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명장의 영화는 이름만으로도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흥행 요소는 시나리오에서 나온다.
아무리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볼거리가 많다고 한들 내용이 재미가 없으면 인기는 금새 시든다. 이미 그런 영화들의 몰락을 숱하게 봤다. 기대 속에 개봉한 대작 영화들이 정작 시나리오에 발목이 잡혀 쓸쓸히 퇴장했다. 대표적인 영화로 김지훈 감독의 ‘7광구’를 꼽을 수 있다. 130억의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7광구는 한국형 괴수 영화라는 소재와 화려한 캐스팅으로 초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하지만 1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관객 수가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한국 영화의 ‘참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영화 '7광구'는 안성기, 하지원 등 당시 최고의 캐스팅과 화려한 CG로 시선을 사로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시나리오가 발목을 잡았다. 기대를 모았던 괴물은 전혀 무섭지 않았고 긴장감도 없었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지루하게 늘어졌다. 관객들은 7광구의 시나리오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시나리오의 성공 여부는 바로 '얼마나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가'에서 나온다.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가 없고, 충분히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내용 전개는 억지스러워 보인다. 반대로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은 몰입할 수 있다. 공감 자체가 유머가 되고 감동이 된다. 조금은 밋밋한 시나리오도 탁월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마법이다.
이번에 소개할 웹툰은 '공감' 코드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숨막히는 긴장감이나 치밀한 복선 없이 오로지 공감만으로도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다. [삼(三)층 분석] 작품은 <복학왕>이다.
웹툰 <복학왕>은 지난 2011년부터 ‘기안84’ 작가가 연재했던 패션왕의 후속작이다. 패션왕 연재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주인공 ‘우기명’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대학 생활 에피소드를 다룬다.
웹툰 좀 보는 독자중에 '우기명'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패션왕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2011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이후 줄곧 네이버웹툰 1인자였다. 작품 내에서 마치 우기명이 패션의 일인자로 군림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기명의 첫 등장은 끔찍했다. 손대지 않은 교복의 넓은 '통'바지와 '테'안경을 걸친 그의 외모는 '찌질한 범생이' 모습이었다.
<패션왕>은 찌질남 우기명이 같은 반 여자 아이인 ‘박혜진’을 좋아하면서 시작된다. 박혜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멋을 탐하기 시작하고, 결국 패션 최강자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패션왕에서는 패션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작품 한 컷, 한 컷에서 그 당시 유행했던 패션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작가는 여기에 청소년 눈높이에 딱 맞는 유머를 가미했다. 고등학생들의 문화를 탁월하게 담아 낸 유머들은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복학왕>에서는 초점을 고등학생 문화에서 대학생 문화로 옮겼다. 패션이라는 소재를 과감히 줄이고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담아냈다.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우기명을 복학생의 아이콘으로 변화시켰다. <패션왕>과 함께 성장한 독자들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올라가면서 작품도 함께 성장한다. 기안84 작가는 독자와 '공감 코드'를 맞추는데 전력을 다한다. 웹툰 <복학왕>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샀을까?
■ 일층분석 : 공감 유발에 최적화된 작화 디테일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첫번째 요소는 바로 작화의 사실성이다. <패션왕>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작용했던 장점이다. 캐릭터의 복장이나 자세, 표정, 그리고 건물이나 배경까지 모든 연출이 사실적이다. 그림체가 아니라 '묘사'가 사실적이다. <복학왕>은 대학 문화 속에서 충분히 공감할 만한 특징들을 쏙쏙 캐치해 낸다. 기안 84는 미묘한 상황을 잡아내는 능력이 독보적인 작가다. 문화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디테일들이 그의 작품에서는 넘쳐난다. 디테일에는 약간의 과장이 가미된다. 현실과 만화 사이의 임계점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과장은 유머로 승화된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꽈잠’(학과의 이름과 학번이 새겨진 점퍼)이라 불리는 점퍼를 입고 딸기를 연신 외치는 여학생의 어깨가 과도하게 들썩이는 것이 보인다. 대학생들의 음주 문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딸기 게임’을 즐기고 있는 장면이다. 과연 저 과도한 어깨의 움직임을 공감하지 못하는 대학생이 있을까? 마치 어제 학교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독자 중 일부는 ‘이거 완전 난데?’라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디테일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오히려 독자들은 내러티브보다 숨겨진 디테일을 찾아내는데 열정을 쏟기도 한다. <복학왕>은 작화가 내러티브보다 더 주목받는 몇 안되는 웹툰이다.
■ 이층분석 : 공감의, 공감에 의한, 공감을 위한 내러티브
반대로 내러티브는 특별할 것이 없다. 공감에 집중하는 만화인 만큼 이야기 전개는 캐릭터에 의존한다. 특별한 긴장감이나 복선은 거의 없다. 가끔씩 예전 에피소드들과 연계되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복선이라기보다는 향수를 자극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고 캐릭터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주인공인 '우기명', 우기명의 여자친구 ‘봉지은’, 꾸준히 조연으로 등장하는 학과 선후배들, 단역까지 모두 흔한 대학생 모습 그대로다. 캐릭터 성격은 현실대학생들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화적 요소를 통해 공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뿐 캐릭터 자체에서 특별한 부분을 찾기는 어렵다.
공감은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코드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이 더 좋다. 매번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일주일에 한번은 술자리를 갖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때마다 웃고 즐긴다. 자주 만나는 친구의 얼굴은 실증이 나기보다 편안한 익숙함을 느끼게 한다. <복학왕>의 매력은 바로 평범한 친구와의 만남 같은 익숙함이다. 매번 비슷한 전개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다.
작가는 주요 독자들이 처한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높은 등록금, 학벌과 서열, 대학 군기 문화 등 대학생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이야기 속에 녹여낸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졸업 후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우기명'의 모습은 실제 대학생들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작가는 유머와 과장으로 현실을 포장하지만 독자들은 진한 동질감으로 치유받는다.
■ 3층분석 : 독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우기명
전체적인 공감을 이끄는 장치는 바로 주인공의 '성장'이다. 2011년 고등학생이었던 우기명은 7년의 세월을 거쳐 어느덧 고학번 대학생이 됐다. 철없던 고등학생에서 현실적인 고민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취준생이 됐다. 우기명은 꿈을 밀고 나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기도 하고, 부족한 학벌에 아쉬움을 느끼고 수능을 다시 보기도 한다. 뒤늦게 취업 준비도 하고는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기명은 지금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성장중이다.
2011년 찌질남 '우기명' 시절부터 함께해온 청소년 독자들도 어느덧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됐다. 우기명과 똑같은 생각을 한다. 지난 7년 동안 우기명과 함께 독자도 같이 성장했다. 이제는 '우기명'에서 더 깊은 동료애를 느낀다. 그래서 <복학왕>의 공감대는 더욱 끈끈하다. 주인공과 독자사이에 흐르는 유대감은 <복학왕>의 가장 큰 힘이다.
<복학왕>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느낌이다. 여전히 <복학왕>은 네이버 수요웹툰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들어 자주 보이는 지루한 내용 전개는 조금 불안하다. 이마저도 독자들의 공감대를 만든다. 하루하루 삶은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지루한 하루들 속에서 우리는 '우기명'과 함께 다음 단계로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