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연평균 20% 성장…미국 사모신용시장 약 2조5000억달러 규모
차입금리 6%→12% 수준으로 상승…2023년 이미 차입기업 3곳 중 1곳 이자도 못 벌어
2026년 대형 펀드 환매요청 NAV의 9~12%대…일부 펀드는 40.7%까지 치솟아
은행·PE·생명보험사까지 촘촘히 연결…국내 연기금·금융회사 해외 사모신용 노출 56조원
[더파워 이경호 기자] 은행도 회사채시장도 아닌 ‘제3의 대출시장’으로 급성장한 미국 사모신용시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중견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두 배 가까이 뛰었고, 일부 펀드에는 대규모 환매요청까지 몰리고 있다.
문제는 사모신용펀드 하나의 부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행이 펀드에 돈을 빌려주고, 사모펀드(PE)가 인수한 생명보험사가 다시 사모신용에 투자하는 구조가 확대되면서 시장의 위험이 금융권 곳곳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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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사모신용시장 규모는 현재 약 2조5000억달러로 추산된다. 비공개·비상장 중견기업에 펀드를 통해 자금을 빌려주는 시장으로, 팬데믹 직후인 2020년부터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약 20%씩 성장했다.
미국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약 8%, 상업은행 전체 대출의 18.8%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 약 2조7000억달러와 비교해도 비슷한 수준까지 커졌다.
급성장의 출발점은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견기업에 대한 은행대출이 줄어든 틈을 사모신용펀드가 파고들었다.
이후 초저금리가 장기화되자 높은 수익률을 찾던 연기금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사모신용으로 몰렸다. 사모신용 투자자 가운데 연기금은 전체 자금의 약 31%를 공급하는 최대 투자자다.
은행도 사모신용 확대에 가세했다. 은행이 중견기업에 직접 대출하면 규제자본 산정 과정에서 100%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되지만 사모신용펀드에 대출할 경우 위험가중치는 20%로 낮아진다.
직접 중견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보다 펀드를 거치는 구조가 자본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관련 연구에서는 중견기업 직접대출과 사모신용펀드 대출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각각 17.5%, 46.2%로 나타났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성장 공식을 지탱하던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모신용 대출은 대부분 변동금리다. 담보부 익일물 조달금리(SOFR)에 통상 5~7%의 신용스프레드를 더하는 구조다. 제로금리 당시 차입기업이 부담하던 금리는 평균 6% 수준이었지만 이후 기준금리와 신용스프레드가 함께 상승하면서 약 12%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자 부담이 급증한 가운데 차입기업의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사모신용 차입기업 가운데 정보기술(IT) 업종이 4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상당수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이다.
AI 기술 발전으로 소프트웨어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제품개발 주기가 짧아지면서 이들 기업의 수익성도 압박받고 있다. 최근 SaaS 기업 가운데 약 절반은 현금흐름 기준 EBITDA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미 2023년 기준 사모신용 차입기업 약 3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현금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고 다시 빚을 내 이자를 지급하는 ‘PIK(Payment-In-Kind)’ 대출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PIK 적용 대출 비중은 2022년 5~6% 수준에서 2025년 12%까지 상승했다.
PIK는 현금 이자를 받는 대신 미지급 이자만큼 대출원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당장은 연체를 피할 수 있지만 이후 채무불이행이나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대출로 평가된다.
차입기업의 부실 징후는 펀드 가치에도 반영되고 있다. 2025년 9월 기준 원금의 절반 이상을 상각한 사모신용 대출 비중은 전체의 10%를 넘어섰다.
2025년 말 순자산가치(NAV) 기준 펀드 수익률도 1.8%로, 6개월 전 3.7%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장된 사업개발회사(BDC)의 주가는 더욱 빠르게 반응했다. 2026년 7월 말 기준 S&P BDC지수는 2025년 2월 고점보다 31% 하락했다.
투자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인 환매를 허용하는 준개방형 BDC 규모는 2019년 약 100억달러에서 2025~2026년 약 3000억달러로 30배가량 급증했다.
올해 3월 Ares, Apollo, BlackRock이 운용하는 BDC에는 각각 NAV의 11.6%, 11.2%, 9.3%에 해당하는 환매요청이 들어왔다. Blue Owl이 운용하는 한 펀드는 환매요청 비율이 40.7%까지 치솟았다.
대부분의 펀드는 약정에 따라 한 분기에 NAV의 5%까지만 환매를 받아줬다. Blackstone은 대표 사모신용펀드 BCRED에서 7.9%의 환매요청이 발생하자 임직원 자금 1억5000만달러까지 투입해 전액 환매에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환매압박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올해 6월 4개 대형 운용사 펀드의 환매신청액은 직전 3개월보다 56% 증가했고, Blackstone을 포함한 운용사들은 환매 한도를 5%로 제한했다. 일부 펀드에서는 환매 자체를 중단한 사례도 나타났다.
신규자금 유입도 빠르게 줄었다. 올해 5월 Blue Owl Credit Income 펀드의 신규 설정액은 전월 대비 50%, 전년 동기 대비 95% 감소했다. Blue Owl Technology Income 역시 전년 동기보다 90% 줄었다.
4월 전체 BDC 신규 설정액도 전년보다 74% 감소해 2023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이러한 환매 증가가 곧바로 사모신용펀드의 유동성 위기나 연쇄 디폴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사모신용펀드는 애초 만기 이전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구조이고, 준개방형 펀드 역시 환매비율을 제한하거나 환매 자체를 중단할 수 있다. 펀드의 부채비율 역시 시장 전체적으로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레버리지가 높은 BDC조차 2024년 말 기준 자산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4%였다. 자산가치가 떨어지더라도 펀드 자체가 즉각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위험은 사모신용시장의 ‘밖’에 있다. 펀드에서 돈을 빌린 기업 가운데 약 절반은 은행에서도 동시에 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나의 기업이 사모신용과 은행대출을 동시에 이용하는 ‘이중차입’ 구조다.
사모신용 차입기업 가운데 61%는 2개 이상의 펀드에서 돈을 빌리고 있고, 6개 이상 펀드로부터 차입한 기업도 18%에 달한다. 한 기업의 부실이 여러 사모신용펀드에 동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구조다.
대형 자산운용사가 사모신용과 PE 사업을 함께 운영한다는 점도 연결고리를 키운다. 두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운용사 그룹이 미국 전체 사모신용시장의 81.2%를 점유하고 있다.
은행도 사모신용펀드에 대출한도를 제공하는 동시에 합성위험이전거래(SRT)를 통해 신용위험을 펀드로 넘기고 있다. 은행이 신용위험을 이전한 바로 그 펀드에 다시 대출을 제공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곳은 생명보험사다. PE가 생명보험사를 인수한 뒤 보험료로 유입된 자금을 계열 사모신용펀드에 투자하는 구조가 빠르게 늘었다. PE 소유 생명보험사가 미국 생명보험산업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에서 2024년 말 14%까지 상승했다.
생명보험사는 직접 펀드에 투자하는 것뿐 아니라 기업대출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사모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사모채권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 사모ABS와 사모채권 시장 규모는 약 8490억달러로 전체 BDC 시장의 두 배를 웃돈다. 생명보험사는 해당 증권 발행잔액의 약 65%를 보유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대출 등을 포함하면 미국 생명보험사의 사모신용 노출 규모가 전체 자산의 35%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사모신용시장의 실제 위험 규모가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2조5000억달러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펀드 시장만 따로 떼어 볼 경우 은행의 이중차입과 보험사의 변형된 사모신용 노출이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사모신용 차입기업의 건전성이 완만하게 나빠질 경우 손실도 서서히 반영돼 시스템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차입기업 부실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펀드 NAV가 한꺼번에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연금기금과 보험사, 은행이 동시에 손실을 입으면 자본비율을 맞추거나 자산배분을 조정하기 위해 국채나 우량채 등 유동성 높은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다른 금융회사까지 손실을 입으면 위기가 사모신용시장 밖으로 전염될 수 있다.
특히 높은 레버리지와 단기차입에 의존하는 투자은행이나 일부 헤지펀드까지 자산매각에 나설 경우 유동성 위기와 자산가격 하락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금융시장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올해 2월 말 기준 국내 연기금과 금융회사의 해외 사모신용 투자 규모는 56조원에 달한다.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회사의 브랜드만 믿고 투자하기보다 개별 상품의 위험과 차입기업의 건전성, 펀드 구조를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외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투자 포지션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관들이 이를 떠안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 사모신용시장의 문제는 당장 ‘펀드런’이나 연쇄 디폴트가 임박했다는 데 있지 않다. 약 2조5000억달러의 시장 뒤편에서 은행과 PE, 생명보험사, 연기금이 하나의 차입기업과 자산을 매개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차입기업의 금리 부담과 수익성 악화가 계속될 경우 위험이 어느 한 펀드에 머물지 않고 금융권 전체로 얼마나 빠르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