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 이해성, 초연 5년 만에 작품 고유의 진정성에 승부
두 달 남은 지방선거로 시사 뉴스란이 연일 뜨겁다. 이전보다는 덜하지만,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모두의 축제여야 하는 선거가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는 피아식별용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철, 이념의 색안경을 걷어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 한 편이 관객을 기다린다.
4월 17일부터 5월 4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연극 ‘고래’가 공연된다. 그간 연극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 온 극단 고래의 다섯 번째 정기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원작자이자 극단 고래 대표인 이해성 연출가가 5년 만에 직접 연출을 맡는다. 작품 고유의 문학성과 진정성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전망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에 관한 연극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거, 고 자체가 욕망 아니네?”
16년 전 여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1998년 6월 22일 무장공비 9명을 태운 북한 잠수정이 강원도 속초까지 내려왔다. 우리 해군은 속초 해안 동쪽 11.5마일에서 어망에 걸려 표류하던 북한 잠수정을 추격했다. 추격 끝에 잠수정 속 무상간첩은 전원 시신으로 발견됐다.
연극 ‘고래’는 실제 사건인 1998년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쫓기는 잠수정 속, 인간적인 삶을 원했던 무장간첩들의 죽음 직전을 그려낸다. 극중 간첩들은 우리 이웃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조직의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고 죽음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작품은 죽음 앞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욕망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 떠있는 북한 잠수정 속. 무장공비들은 임무를 마친 저격수들이 잠수정으로 돌아오자 모두 원산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그러던 중 ‘추진기수’의 이념적 발언에 분위기가 가라앉고, ‘행동대장’과 ‘추진기수’의 논쟁이 이어진다. 이때 어선 한 척이 잠수정으로 다가오고, 꽁치잡이 그물이 잠수정의 추진날개에 휘말린다.
연극 ‘고래’는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과 죽음을 보는 시선에서 ‘우리’와 ‘그들’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극단 고래는 연극 ‘빨간 시’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극 ‘살’에서 천민자본주의를 돌아봤다. 이번 공연도 우리 사회의 소외된 가치를 들여다보고 고민해보는 장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08년 초연, 2009년 박근형 연출로 다시 화제
작품은 극단 고래가 창단되기 전 2008년에 연우소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초연 당시 정만식, 박완규 등 극단 백수광부 명배우들의 열연과 탄탄한 스토리로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가 재연해 대중성을 입증했다.
이번 공연은 원작자인 이해성 연출가가 5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무대로 기대를 모은다. 대한민국 연극계 베테랑과 극단 고래의 신인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조장’ 역은 2008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의 주인공 서상원이 열연한다. 그는 극단 미추 출신으로 2001년부터 국립극단에 몸담은 실력파 배우다.
‘부기관장’ 역은 연극 ‘고래’ 초연과 재연을 함께한 박완규가 다시 맡는다. 그는 2010년 제15회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제3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상과 2011년 동아연극상 유인촌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이밖에도 전형재, 유성진, 안재현, 이대희, 홍철희, 이기현, 허지행, 이운호가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