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무게감 이긴 즐거움
시전에서 춘화를 파는 장사치가 글을 쓴다. 망나니는 칼이 아닌 붓을 잡고 있다. 이들은 원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말한다. 이곳이 바로 ‘풍월향도’다. 3년 전 ‘풍월향도’의 수장 ‘허봉’은 불온한 문장을 썼다는 이유로 처형당한다. 그의 뒤를 이어 ‘휘경’이 수장을 맡는다. ‘휘경’은 연재를 시작해 ‘풍월향도’의 부흥을 꾀한다. 이를 위해 ‘허봉’의 동생이자 능력 있는 저자 ‘허균’을 불러들인다.
글, ‘허균’에게는 무서운 것
무대 위에는 술에 찌든 주정뱅이가 서 있다. 그는 ‘풍월향도’ 사람들에게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붓이 어울리지 않는 일자무식이 무슨 글을 쓰느냐’라고 한바탕 독설을 퍼붓는다. 술주정뱅이는 그들의 글을 읽는 시늉만 할뿐 그들의 글을 진지하게 보지 않는다. 안하무인이 따로 없다. 이 사람이 바로 ‘허균’이다. 최초의 언문소설 ‘홍길동전’을 쓴 저자다.
역사 속 ‘허균’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굴곡진 삶을 살다간 정치인이다. 무대에서 그는 천방지축,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하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고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한다. ‘풍월향도’를 오합지졸이라 비웃는다. 역사는 ‘허균’을 타고난 글쟁이로 기억한다. 글쟁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술주정뱅이만 남은 걸까.
‘허균’의 변화는 ‘허봉’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서책 속 단 한 문장은 ‘허봉’을 죽음으로 이끈다. 그 문장은 ‘허봉’이 아닌 ‘허균’의 문장이다. ‘허균’은 ‘허봉’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절필을 선언한다. 이 사건으로 ‘허균’은 글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풍월향도’ 사람들에게 “저자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허균’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 그 글이 불러올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할까 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저자, 자신의 글에 책임지다
타고난 글쟁이는 생각하는 것도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많다. 그는 소소한 일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것을 글로 승화시킨다. ‘허균’이 ‘풍월향도’ 사람들에게 ‘사냥’을 제일 먼저 가르친 것도 이 때문이다. 글감을 찾는 ‘사냥’은 시전상인들의 일상을 문장과 문단, 나아가 이야기로 바꾼다. 그에게 주위에 널린 모든 것은 글감이고 이야기다. 그런 ‘허균’이 절필하지 않고 계속 붓을 잡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문득 궁금해진다.
저자는 자신이 쓴 글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어느 날 ‘매창’은 ‘허균’을 찾아와 연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매창’은 ‘풍월향도’의 유일한 여자 회원이자 기생이다. ‘허균’는 자신보다 뛰어난 저자 ‘매창’을 설득한다. 설득법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매창’이 연재를 그만두면 발생하는 일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글은 쓰는 것은 아이를 잉태하는 것과 같다. 이야기 속 인물은 저자가 연재를 중단하는 순간 죽는다. 저자가 붓을 들고 방황하면 글 속 인물도 같이 방황한다. 그들은 저자와 보이지 않는 탯줄로 이어져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작업이다. 저자는 글 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죽일 수도 있다.
‘허균’은 저자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이다. 그는 이런 이유로 섣불리 ‘풍월향도’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붓을 잡는 것은 어쭙잖게 시작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렇고 ‘풍월향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풍월향도’, 저자의 즐거움 알려주다
저자는 ‘독자가 원하는 글을 썼을 때’, ‘글이 독자에게 희망을 전해줄 때’, ‘현실 안에서 꿈꿀 힘을 줄 때’ 즐거움을 느낀다. ‘풍월향도’는 ‘허균’에게 저자가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최근 3년간 일어난 일들은 그에게 피로감을 주었다. ‘허균’은 ‘풍월향도’ 사람들을 통해 저자가 해야 하는 일, 저자가 써야 하는 글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깨달음은 곧 실천으로 옮겨져 언문소설 ‘홍길동전’을 탄생시킨다.
관객은 ‘허균’이 거친 일련의 과정과 변하는 모습을 쭉 지켜본다. ‘홍길동전’의 탄생이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최초의 언문소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홍길동전’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열망했는지, 나아가 글을 통해 어떤 희망을 가졌는지 알고 있다. 절필했던 ‘허균’이 다시 붓을 잡게 된 계기와 ‘풍월향도’의 순수한 열망이 ‘홍길동전’의 탄생을 더욱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