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소재로 풀어낸 보편적 이야기
아무래도 이 뮤지컬, 도핑테스트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작품 전체가 흥분제를 복용한 듯 연신 웃음과 흥이 넘친다. 과장된 드랙퀸 의상과 짙은 화장, 익숙한 유명 팝 음악까지 공연 내내 들썩거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넘실대는 유명 팝 음악에 모두가 일어서서 즐기는 커튼콜은 ‘축제의 절정’이다. 이쯤 되면 ‘성소수자판 맘마미아’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뮤지컬은 드랙퀸으로 살아가는 ‘틱’, 트렌스젠더 ‘버나뎃’, 사랑스러운 게이 ‘아담’이 시드니에서 앨리스로 ‘틱’의 아들을 만나러 가는 과정을 담는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7080 팝 명곡들로 채워지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무대는 세계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팝 음악이 28개의 뮤지컬넘버로 등장한다. ‘It's raining man’, ‘Material Girl’, ‘I will survive’ 등은 각 장면과의 밀도 높은 밀착감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흔히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억지 상황 만들기’와 같은 해프닝도 없다.
‘쇼 뮤지컬’로서의 본분은 차고 넘친다. 작품은 마치 ‘작정’한 것처럼 보여준다. 한 회 공연 당 이뤄지는 261번의 의상 체인징과 65번의 가발 체인징은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휘황찬란하다. 여기에 LED 무대를 통해 표현의 효율성을 높이고, 화려한 색감을 덧칠한다. 원작 영화에서 보았던 평면적 화려함과 달리, 무대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화려함은 체감온도 자체가 다르다.
작품은 성소수자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한순간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외려 더 밝고 경쾌하다.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춤거릴지언정, 뒤로 물러서진 않는다. 낡은 버스인 ‘프리실라’가 ‘더러운 호모 새끼들’이란 모욕을 받고서도 예쁜 핑크색 페인트를 통해 멋쟁이 버스로 다시 태어났듯이,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여정 중 마주한 상처는 그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희망과 밝음으로 세상에 맞서 일어서게 한다. 앨리스로 향하는 길목에서 얻은 우정과 가족애는 훈훈한 ‘쇼 뮤지컬’의 마지막 마무리를 확실히 점찍는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사실 매우 보편적인 가족 이야기다. ‘틱’은 6년이나 떨어져 있었던 아들이 자신을 보고 실망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아빠의 역할과 성소수자로서 삶 사이의 딜레마에 빠지고, 그 간격은 경쾌함 속에서도 짙은 삶의 페이소스로 관객에게 불붙는다. 그가 품은 ‘아버지’로서의 고뇌는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그의 물음은 ‘나는 좋은 자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우리의 물음으로 치환된다.
‘틱’의 아들 ‘벤지’는 뮤지컬 ‘프리실라’가 담고 있는 메시지의 종착역이다. ‘벤지’는 같이 살면 좋겠냐는 ‘틱’의 질문에 “여기 방 많아요. (중략) 아빠도 따로 방 쓸 수 있어요. 아빠랑 아빠 남자친구랑”이라고 대답한다. ‘틱’은 당황하지만, ‘벤지’는 “엄마가 이제 아빠도 남자친구 생길 때가 됐다고 했어요”라고 해맑게 응대한다. ‘벤지’가 아무런 편견 없이 ‘아버지’로서 ‘틱’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대목이다. 이어 펼쳐지는 두 사람의 듀엣곡 ‘Always On My Mind’는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 그 자체를 보여준다.
무대는 안정적인 세련미를 과시한다. 무대 전환은 색색의 드랙퀸 공연부터 핑크색 트레일러까지 기름칠 잘된 금속부품처럼 능청스럽게 맞물려 돌아간다. 립싱크로 진행되는 드랙퀸 공연은 무대 천정에서 세 명의 여배우가 와이어를 탄 채 라이브로 들려준다. 살아있는 라이브의 질감과 드랙퀸의 퍼포먼스가 매끄럽게 연결된 연출이다. 다만, 원어 가사의 익숙함에 가려진 한국어 번역 대사가 귀에 잘 박히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배우들은 으리으리하다. ‘틱’ 역의 마이클리는 신묘(?)하다. 어눌한 한국어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만, 표정에 묻어나오는 진심은 정다운 넓이로 객석을 그러안는다. 감정이 머물 곳을 충분히 짚어내는 연기는 그가 왜 좋은 배우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트렌스젠더 ‘버나뎃’ 역의 고영빈은 그동안의 이미지를 싹 벗고, 무대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공연이 끝날 때쯤이면 쫙 뻗은 각선미로 손끝을 말아 올리는 그를 향한 ‘예쁘다’는 찬탄은 흔해빠진 수식어처럼 익숙해진다.
‘아담’ 역을 맡은 조권은 ‘신의 한 수’다. 전작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다소 짧은 한 대목을 연기했던 그는 단단히 벼른 듯 무대를 갖고 논다. 자신감은 넘치되, 자만하지 않는 연기도 미덕이다. 앙상블들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킬힐을 신고 춤추는 남성 군무는 물론, 공중에서 노래하는 세 명의 디바들, 추처럼 묵직한 연기력으로 작품의 허리를 탄탄히 받쳐주는 ‘밥’ 역의 장대웅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뮤지컬 ‘프리실라’는 8월 3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