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학교 틀속 권력구조 주목..'극의 긴장감' 돋보여
한 소년 '이레'가 있다. 이레는 전국 상위 0.3%의 수재다. 전교 1등을 놓쳐 본 적 없고, 학교의 규율에 어긋난 일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일이 터진다. 학교 과학실에서 남자친구 지훈과 키스하는 사진이 학교 게시판에 나붙은 것이다. 이레는 억울하다. 반성실에 학교 일진 현신과 함께 한 달이나 갇혀 반성문을 써야 하는 것도, 그 때문에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도 억울하고 원통하다.
그 중 가장 억울한 건 ‘누가 키스 사진을 찍고, 학교에 뿌리기까지 했냐는 것’이다. 이레는 범인을 알고 싶다. 그는 결국, 반성문을 대신 써주는 대가로 반성실 동지 현신과 함께 범인 찾기에 나선다.
연극 ‘바람직한 청소년’은 2010년 미국의 ‘타일러 클레멘티 자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이 실화는 ‘타일러’라는 남학생이 동성친구와 키스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자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한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통해 ‘IT GET BETTER PROJECT’라는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캠페인이 생기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학교는 흔히 ‘사회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권력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존재하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탈선과 방조가 순환한다. 과정의 끝은 언제나 ‘바람직하게 나아가는 것’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다. 그 모순은 늘 반복되어온 일상적인 ‘패턴’처럼 우리 주변을 맴돈다.
연극 ‘바람직한 청소년’은 그 패턴에 작은 돌을 던진다. 작품은 이레가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사진을 퍼뜨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추리’의 형식을 빌려 진행된다. 현신과 이레는 당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용의자들을 추적하고,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고정돼 있다. 일상처럼 오가는 험한 욕들은 꾸밈없이 학생들의 ‘현실 언어’를 마주보게 한다. 무대 바닥에서 단을 높인 밋밋한 반성실은 아이들이 느끼는 갑갑함을 반영하듯 좁고 막막하다. 반성실을 가운데 두고 하나씩 벗겨지는 천조각들은 학교 곳곳에 숨겨져 있던 존재들, 혹은 비밀들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며 극의 긴장감을 추동한다.
작품 속 학교라는 틀 안에서 권력 구조는 촘촘하게 나뉜다. 선생님과 학생, 우등생과 문제아, 우등생 중에서도 1등과 2등, 문제아 중에서도 일진과 이진 등으로 세분화된다. 흥미로운 것은, 반성실에 갇힌 1등과 일진이 ‘반성실’을 통해 각각 문제아와 이진으로 밀려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되찾으려 애쓰지만, 한 번 무너진 구조는 다시 세워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레와 현신은 답답함과 막막함 속에서도 범인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사건을 파헤치며 의외의 진실과 마주한다. 그들이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망연자실한 이레는 꿈꿨던 복수를 이루지 못한다. 현신은 그동안 생각없이 휘둘렀던 자신의 주먹이 어떤 일을 불러왔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아이들의 분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무력’과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징계위원회로 가기 전, 반성문을 읽는 아이들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는 사회를 향한 마지막 묵시록처럼 들린다. 아이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아이들은 잘못하지 않은 자신들의 잘못을 고해야만 한다.
하지만, 절망으로 향하는 아이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이레는 징계 심사를 위해 교장실로 향하기 전, 반성문을 저 높은 하늘로 거침없이 내던진다. 그리고 그동안 지독하게 피했던 지훈의 전화를 받아 ‘미안해’, ‘사랑해’라고 말한다. 반성문을 쓰는 내내 “너 걔 진짜 사랑했냐”는 현신의 질문을 회피했던 이레가 결국 자신을 인정한 것이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은 무언가가 ‘성장’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이레는 ‘사랑해’라는 말을 통해 ‘바람직하다’는 말로 학교가 휘두른 폭력에 대항할 힘을 갖췄다. 결국, 그 숱한 방해 속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했고, 나아갔다. 어쩌면, 이 작품은 두 소년을 통해 어른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했던’ 우리의 행태에 대해 ‘더이상은 안된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