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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받아적기] '해피 데스데이', 뻔뻔하거나 혹은 fun fun하거나

이선기 기자

기사입력 : 2017-11-1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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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이선기 기자] *작품 이야기가 일부 노출될 수 있습니다.

아리송하다. 어떤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마땅히 정의할 만한 단어가 없다. 분명 공포영화인데, 공포영화가 아니다. 웃긴 걸로 봐서는 코믹영화인데, 마냥 코믹하기만 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정말 뻔한 스토리인데, 또 어떻게 보면 정말 ‘펀(fun)’한 스토리다. 제작사 블룸하우스는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르를 ‘호러테이닝(호러+엔터테이닝)’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르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반응이 뜨겁다. 이 괴짜같은 이야기에 전세계 사람들의 웃음이 '빵빵' 터지고 있다.

영화 <해피 데스데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치있는 연출로 공포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블룸하우스’의 신작이다. 올해 상반기 <겟아웃>으로 클리셰를 깨뜨리더니, 이번에는 <해피 데스데이>로 장르를 ‘뻔뻔’하게 깨뜨렸다. 결과는 성공이다. 이미 현지에서는 <토르:라그나로크>를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끌어내리고 정상을 차지했다.

마치 신선한 반란과도 같다. 무엇이 관객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기존 영화들과 달리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뻔뻔하거나, 혹은 fun fun하거나 말이다.

그럼 도대체 무슨 영화인 것이냐.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포스터)이미지 확대보기
그럼 도대체 무슨 영화인 것이냐.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포스터)

◇ “얼마나 뻔뻔하냐면 말이죠…”

뻔뻔한 점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영화 <해피 데스데이>는 상영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철판을 깔기 시작한다.

그것을 눈치채려면, 영화 상영에 앞서 오프닝 크레딧으로 등장하는 유니버셜의 로고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익숙한 이 로고는 등장과 동시에 지익-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반복된다.

영사기에 문제가 생긴 걸까? 상영관을 찾은 관객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제작진이 의도한 것이다. <해피 데스데이> 소재가 ‘타임 루프’라는 것을 시작 전부터 알려주는 일종의 ‘트릭’이다. 동시에 언제 어디서 루프가 반복될 지 예측할 수 없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기자는 이 트릭의 진정한 의미를 영화 중반부가 지나고 나서야 문득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이 암시를 철저하게 이행한다. 어느 쪽을 바라봐도 뻔뻔함 투성이다.

일단 주인공 자체부터 뻔뻔스럽다. 학교 내에서 잘 나가는 소위 ‘쭉빵걸’답게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콧대를 자랑한다. 만만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얕보는 것이 일상이다. 최고의 퀸카답게 불친절하고, 불량하다. 하지만 여기까진 이해해 줄 만 하다. 이런 캐릭터들은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는가.

표정만 봐도 그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스틸컷)이미지 확대보기
표정만 봐도 그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스틸컷)

내용은 더 뻔뻔하다. 영화는 타임리프라는 다소 식상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트리거는 주인공의 목숨이다. 극 중 주인공이 이유도 모른 채 잔인하게 살해될 때마다 과거도 다시 반복되고, 주인공도 역시 죽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방식이다. 주인공에게는 식상해 보이는 만큼이나 끔찍한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무언가 이상하다. 주인공이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초반까지는 철저히 공포영화의 수순을 따르더니, 갑작스럽게 장르의 변환을 시도한다. 일말의 예고도 없다.

긴장감이 넘치던 흐름은 일순간에 찬 물을 뒤집어 쓰고야 만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느닷없는 호탕한 웃음이 이야기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내 호러와 코미디의 경계를 쉴 새 없이 넘나들기 시작한다. 배려라고는 없는 전환 속도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끔찍했던 죽음은 느닷없이 놀이가 되고, 일상이 된다. 그러고는 당황하는 관객들을 앞에 두고 “Why not?”을 외칠 뿐이다. 이게 뭐 어떠냐는 식이다.

◇ 뻔뻔함에서 ‘fun fun’함으로


마치 뻔뻔함의 극치야말로 이 영화가 의도한 핵심 장치인 것만 같다. 기존의 뻔한 영화들을 답습할 바에는 차라리 뻔뻔해지자는 패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영화의 뻔뻔함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점이다.

이 패기는 블룸하우스라는 다섯 글자로부터 나온다. 클리셰를 타파하고 신대륙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 온 그들이다. 그동안 블룸하우스가 내놓았던 작품들이 모두 그러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해피 데스데이>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은 비록 뻔뻔해 보이지만, 이번에도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은 뻔한 영화가 만연한 시장에서, 적절한 뻔뻔함으로 ‘fun’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살인자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계속 실패하지만 말이다.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스틸컷)이미지 확대보기
살인자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계속 실패하지만 말이다.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스틸컷)

<해피 데스데이>의 뻔뻔함은 엉뚱하지만, 의외로 현실적이다. 상반된 장르의 하모니가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상상 욕구를 묘하게 자극한다. 예컨대, 누구에게나 그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무심코 “나였으면 이렇게 행동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해피 데스데이>는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 엮은 ‘만약 나였으면’ 행동 지침서와 같다. 다만 그동안의 영화들이 안 그랬을 뿐이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고 했다.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이 새어 나온다.

웃음은 공감으로부터 나온다. 이 영화의 기행은 되려 현실에 존재하는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내뱉는 ‘뻔뻔’이라는 단어는 곧 ‘fun fun’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마법이 된다.

주인공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죽음의 굴레를 오히려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도 기억 못해”라고 말하며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나, 살인자와의 싸움을 한 밤의 숨바꼭질인 마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장면은 비현실에 대한 관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충분하다.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하루가 주어진다면 해 보고 싶은 행동 리스트’ 따위의 것들을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우리들의 판타지를 대신 해소시켜주기로 작정한 영화다.

◇ 무작정 뻔뻔함으로 끝나는 부분도 존재

하지만 아쉽게도 fun fun함은 판타지의 해소에서 그치고 만다. 기행이 반복되는 탓에 전체적인 이야기의 완성도는 그리 높지 못하다. 특히 몇몇 시퀀스는 너무나 뻔뻔해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이를테면, 후반부의 결말은 러닝 타임 내내 유지되는 뻔뻔함에 비해 터무니없이 밋밋하다. 다른 몇 가지의 장면들도 힘을 과하게 준 느낌이 역력하다. 너무 신선함을 의식한 탓인지, 오히려 그 의도가 반감되기도 한다. 결국 기승전결의 구조는 크게 예상과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허를 찌르는 반전도 무난한 틀 안에서 기능하다 보니 날이 무딘 감이 느껴진다. 뒷심이 확실히 아쉽다는 느낌이다. 패기만큼이나 젊은 제작사의 경험 부족이랄까.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경험 부족을 드러낸다. 비록 살해를 당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스틸컷)이미지 확대보기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경험 부족을 드러낸다. 비록 살해를 당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사진=영화 '해피 데스데이' 스틸컷)

하지만 이런 색다른 시도가 늘고 있다는 점은 자체로 고무적인 일이다. 블록버스터와 리메이크로 포장된 현재의 영화계에서 <해피 데스데이>와 같은 반란은 쿠데타라기보다는, 혁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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