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르의 예술이던 시대의 명작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법이다. 명곡은 다시 불리고 훌륭한 연극은 무대에 다시 오른다.
리메이크는 음악에서도 흥미로운 소재다. 다른 음악 스타일로 편곡되고 다른 목소리로 불리는 명곡은 새롭게 들린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서는 명작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다르다. 리듬, 멜로디까지 바꾸는 편곡이 일반적인 가요와 달리 클래식은 악보의 음표 하나도 수정하지 않는다. 같은 음을 연주해도 ‘어떻게’ 연주하는 지가 중요하다. 작은 차이가 연주자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 기사는 클래식 연주의 해석을 소개한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연주자들 간의 차이가 궁금했을 것이다. 클래식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을 토대로 연주자의 스타일을 구분 지어보자.
◇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 ‘전통적 해석’
전통적 해석은 오랜 기간 연주자들이 보편적으로 지켜왔던 방식이나 사람들이 이미 익숙한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작곡가나 작품의 이미지에 맞게 연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는 경쾌하고 가볍게 연주하고 브람스는 풍부한 울림으로 연주하는 식이다.
대중들이 전통적인 해석을 판단하는 기준은 과거의 명반이다. 그런 명반은 레퍼런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연주와 이전에 자주 들었던 연주를 자주 비교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오랫동안 감상하면서 인정했기 때문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미지 확대보기이 무지치와 펠릭스 아요의 비발디 '사계' 앨범 (1959년, PHILIPS)
비발디(Antonio Vivaldi) <사계>의 레퍼런스로 손꼽히는 이 무지치(I MUSICI)와 바이올리니스트 펠릭스 아요(Felix Ayo)의 연주를 들어보자. 이 음반은 비발디 연주의 전통적인 해석으로 손꼽힌다.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 단정한 연주가 특징이다. 따뜻한 음색으로 풍부하고 우아하게 연주했다고 평가받으며 사랑받은 음반이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 ‘원전 연주’
원전 연주는 작품이 작곡된 그 당시의 방식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 방식으로 연주해서 시대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곡됐던 시기의 악기와 연주방식을 채택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원전 연주는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때 바로크 방식의 바이올린을 그대로 사용한다.
때로는 원전 연주가 현대적이고 새로운 해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녹음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의 연주를 들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현대식 악기와 연주법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자주 접할 기회가 없던 옛날 방식의 악기 소리가 더 새롭게 들리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에우로파 갈란테와 파비오 비온디의 비발디 '사계' 앨범 (2000년, VIRGIN)
비발디의 사계를 시대 연주로 녹음한 버전을 이 무지치의 음반과 비교해서 들어보자. 파비오 비온디(Fabio Biondi)와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의 <사계> 음반은 비발디 연주와 시대 연주의 새 지평을 가져온 명반으로 손꼽힌다. 비발디의 사계를 바로크 시대의 악기로 연주했지만, 오히려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재해석했다.
이무지치의 앨범의 현대식 악기에 비교했을 때 바로크 시대의 악기는 음색이 가볍고 투명하며 울림도 다소 적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매우 거칠고 강렬하다. 리듬을 강조해 빠른 템포로 연주했다. 평화로운 느낌의 비발디의 사계가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음악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 연주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 ‘악보에 근거한 해석’
연주자는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입장이므로 작곡가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작곡가의 악보를 수용하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 연주의 해석도 많이 달라진다.
연주자의 즉흥 연주 없이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악보에 근거한 해석을 중시하는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1순위로 여긴다. 연주자의 자의적인 연주를 배제하고 템포와 악상 표현까지 악보 그대로 연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중 스케일이 크고 격정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이하 열정 소나타)을 악보에 근거한 해석으로 들어보자. 20세기의 거장 피아니스트인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은 악보대로 정확히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연주가 다소 단조롭고 특별한 개성을 보여 주진 않지만, 작품의 의도는 정확히 파악해낸다. 브렌델은 <열정 소나타>를 지나치게 빠르거나 과격하게 연주하지 않고 균형을 잘 잡아서 연주한다.
◇ 연주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 작곡가의 의도를 재해석
어떤 연주자는 더 훌륭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연주를 위해 작곡가의 음악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 분석을 토대로 클래식 작품을 재해석한 연주를 선보인다. 연주자의 기량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작곡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감정이나 음악적 효과를 강조해서 연주하는 것이다.
20세기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Sviatoslav Richter)는 작곡가의 의도를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연주로 유명하다. 자신의 개성보다 작곡가의 의도대로 치는 게 그의 연주 철학이었다. 그의 <열정 소나타> 연주는 힘이 넘치는 연주로 유명하다. <열정 소나타>를 더욱 격정적이고 폭발적으로 연주해서 작품의 극적인 대비가 강조됐다는 평이다.
◇ 연주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주자의 해석이 매우 독특해서 작품에서 작곡가의 색깔이 지워지기도 한다. 유명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는 이런 연주를 두고 ‘연주자가 악기를 스스로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쓰는 경우’라는 말을 남겼다. 연주자의 개성이 매우 강하거나 작곡가의 의도나 악보와 상관없이 연주자가 자기 생각대로 작품을 해석하는 경우다. 간혹 연주가 전통적인 해석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면 작품의 짜임새를 무시하는 파괴적인 연주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개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다. 그의 연주는 페달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음색이 매우 날카롭고 세고 여린 연주의 대비 효과가 매우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열정 소나타> 연주에는 베토벤의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고 호로비츠만의 광폭한 연주 스타일이 강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