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조제의 감성 육아 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더파워=싱어송라이터 조제]
Episode #10 : 마음을 녹이는 '소울푸드'
얼마 전 티비에서 배우 김수미 씨가 나오는 요리 프로그램을 봤다. 언제부터인가 유행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리 프로그램들에 조금 지쳐 있어서인지, 처음에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조금 달랐다. 뚝딱뚝딱 거침없이 요리를 해내는 그녀가 참 신통방통하기도 했지만, 보는 내내 화면 너머로 자꾸만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엄마.
한평생 거친 시장 골목 한 켠에서 아버지와 가게를 일궈냈던 워킹맘이자, 사고뭉치 4남매를 키워내느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나의 엄마. 누군가는 그것을 억척스러움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희생과 헌신이라 얘기하고 싶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줄곧 가게 일을 하셨던 탓에 나는 항상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엄마가 한껏 솜씨를 내 차려주시는 음식을 먹는 일이 더없이 큰 행복이었다.
도마 위에서 경쾌하게 춤추는 칼질 소리, 온갖 재료들을 볶고 끓이는 현란한 손놀림, 그리고 마법처럼 피어오르는 맛깔스러운 냄새. 어린 내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요술 같았다. 요리책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그 시절에도 엄마의 요리에는 국경도, 편식도 없었다.
네 남매가 참새처럼 쏟아내는 주문 공세에도 엄마는 마치 주크박스처럼 '뚝딱'하고 근사한 요리를 밥상에 올려주셨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또래 친구들이 즐겨 찾던 패스트푸드점을 고등학생이 돼서야 처음 경험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우리 식구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됐다. 손맛 좋은 엄마 덕분에 간을 맞추고 요리하는 것에 제법 자신이 있던 내게도 매 끼니를 챙기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의 입맛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꽤나 품을 들이는 음식이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한 숟가락 떠먹이기가 쉽지 않았다. 때때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할 때면 어려움은 배가 됐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도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고, 애타는 마음은 고스란히 남겨진 밥그릇만큼 쌓여갔다.
하루는 딸이 구내염에 걸려 하루종일 고작 물 몇 모금밖에 넘기지 못했다. 허둥지둥 방법을 찾지 못해 힘겨워하던 중, 아내가 사골을 우려 먹여보자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한걸음에 마트로 달려가 사골을 사 왔다. 여러 번 핏물을 빼고 기름과 불순물을 제거해가며 꼬박 하루를 끓여냈다.
그리고 다음 날, 며칠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 조심스레 한 입 떠먹였다. 꿀꺽.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가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입을 벌렸다. 또 한 입 꿀꺽. 그 간의 허기를 달래듯 아이가 사골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안도의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후로도 아내와 나는 아이가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할 때면 자주 사골국을 끓여주곤 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때마다 고맙게도 잘 먹어주고, 잘 이겨내 주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 아이에게 이 사골국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소울 푸드. 배뿐만 아니라 영혼을 달래준다는 의미의 단어. 누군가에게 그것은 엄마의 따뜻한 집밥일지도, 아니면 어떤 이에게는 우울한 어느 날, 누군가에게 건네준 달콤한 초콜릿 한 개일지도 모른다.
그 종류가 무엇이든, 그 음식 하나는 허기진 우리의 위장을 든든히 채우고, 소중한 시간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 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차려 낼 수 있는 많은 밥상 중에 내 아이의 삶을 위로해 줄 소울 푸드는 무엇이 될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햇살 가득한 일요일에 엄마의 떡볶이를 먹는 것이 됐듯이, 내 아이의 먼 훗날 행복 속에도 나와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이 자리하게 될까?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그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도 서로를 생각하게 되는 법 한 그릇의 마법. 그렇기에 요리는 소통이고, 추억이며, 사랑이다.
문득, 엄마가 그리워진다. 아니 어쩌면 엄마가 나에게 차려주셨던 집밥 안에 가득히 담겼을 따뜻한 사랑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일요일 아침 나의 아침잠을 깨우던 그 심심하고 고소한 엄마의 떡볶이가 유난히 생각나는 밤이다.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김범수 '집밥'(Feat. 긱수, 이희선 여사)(2014년, 8집 - HIM)
발성의 교과서, 완성형 보컬리스트, 가창력의 끝판왕. 그에게 붙여진 다양한 수식어가 말해 주듯, 김범수는 가수라는 이름보다 '보컬리스트'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대한민국 최정상급 뮤지션입니다. 일명 '김나박이'라 불리는 보컬 4대 천왕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1999년 '약속'으로 데뷔한 이래, 실력 하나만으로 치열한 음악 시장에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노래 '집밥'은 그의 8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밥 한 끼에 담긴 가족의 따뜻함을 얘기합니다. 무엇보다 이 노래가 좋았던 건 노래 중간에 삽입된 김범수와 어머니의 전화 통화였습니다. 음악을 하는 저로서는 언제쯤 나도 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가 하고 마냥 부럽기만 했네요.
추운 날씨에 마음이 왠지 허전해지는 요즘, 이 노래가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 여러분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집 밥 너무 그리워
가족의 마법
본가 따뜻한 집으로
내가 쉴 수 있는 곳"
▶ 글쓴이 조제는 촉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뮤지션으로, 2005년 밴드 필베이의 보컬로 데뷔했다. 현재 밴드 모노크롬카세트의 보컬, 싱어송라이터 조제,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문예창작학, 와인양조학을 전공하는 등 음아 ㄱ외에도 와인, 요리, 문학 등 다양한 재능과 색채를 지닌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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