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회장과 SK㈜가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과 시정명령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업기회 제공’ 행위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6일 최 회장과 SK㈜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핵심 쟁점은 지난 2017년 SK가 LG실트론(현 SK실트론)의 지분 51%를 먼저 인수한 뒤, 잔여 지분 49% 가운데 19.6%만 추가로 확보하고 나머지 29.4%를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매입한 과정이었다. 공정위는 이 과정이 SK㈜의 사업기회를 최 회장에게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각각 8억 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주회사 SK가 잔여 지분 인수를 포기하고 최 회장이 이를 매입한 것이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사업기회 제공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공정위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SK가 사업기회를 적극적·직접적으로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업기회 제공이 성립하려면 계열회사가 해당 사업기회를 규범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단순히 인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공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도 “SK가 실트론의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경영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량 인수할 필요가 없었다”며 SK와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또 “입찰 절차에 실트론이나 SK가 개입했다는 정황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지배주주의 계열회사 사업기회 이용을 문제 삼아 처음으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제재가 취소되며 공정위의 규제 권한과 판단 기준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