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교제 관계에서 시작된 폭력이 스토킹을 거쳐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경기 남양주에서는 40대 남성이 교제하던 여성을 스토킹한 끝에 살해했고, 넉 달 뒤인 7월 성남에서는 50대 남성이 자신을 스토킹 혐의로 신고한 옛 연인을 숨지게 했다. 경찰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검거한 스토킹·가정폭력 피의자는 4만 3천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6% 늘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성 범죄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이 폭력의 위법성을 없애지는 않는다. 교제폭력이라는 명칭 자체는 독립된 범죄 구성요건이 아니며, 실제 처벌은 구체적인 행위에 따라 이뤄진다. 폭행이나 상해가 있었다면 형법상 폭행죄·상해죄가, 위협이 있었다면 협박죄가, 피해자를 일정 장소에 가뒀다면 감금죄가 적용된다. 반복적인 연락이나 접근이 요건을 충족하면 스토킹처벌법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면 형법상 강간·강제추행죄나 성폭력처벌법이 함께 검토될 수 있다.
교제폭력은 신체적 폭행보다 '통제'의 형태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를 검사하거나 실시간 위치를 요구하고, 친구·가족과의 만남을 막거나, 이별을 요구하면 협박과 폭행을 반복하는 행위는 단순한 연인 간 갈등으로 보기 어렵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를 망설이거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교제폭력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범죄 유형인 만큼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폭력이 스토킹으로 이어지면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된다. 2023년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피해자가 합의하더라도 형사처벌이 진행될 수 있다. 지속적·반복적 스토킹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흉기 등을 휴대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된다. 수사기관은 사안의 긴급성에 따라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즉각 분리하고 접근·연락을 제한할 수 있다.
경찰의 선제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스토킹 피의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청구가 법원에서 인용된 건수는 750여 건으로 5배가량 늘었고, 구속 수사도 15% 증가했다. 다만 남양주 사건에서는 전자발찌를 찬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를 찾아가는 것을 막지 못해, 사전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보호명령 제도는 아직 시행 전이다. 수사기관이 잠정조치를 청구하지 않을 경우 스토킹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접근금지 등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2026년 3월 국회를 통과해 4월 공포됐지만, 부칙에 따라 공포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피해자는 잠정조치 미청구 사실을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피해가 발생했다면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우선이다. 폭행 사진과 진단서, 협박 메시지, 통화 녹음, CCTV 영상, 메신저 대화 등이 대표적인 자료다. 개별 행위만으로는 전체적인 위험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어, 피해 경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해두면 도움이 된다. 경찰 신고와 함께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 등 필요한 보호수단도 신속히 검토해야 한다.
상대방의 사과만 믿고 대응을 미루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 사과를 믿고 증거를 삭제하거나 신고를 미루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헤어진 이후에도 연락과 접근이 계속된다면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법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지 살펴봐야 한다.
경찰대 출신으로 수사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다뤄온 경험에 비춰보면,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가 현장에서 결정되는 과정에는 피해자의 진술과 제출된 자료, 위험성에 대한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같은 교제폭력이라도 어떤 행위를 어떤 법률로 구성해 주장하느냐에 따라 수사기관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범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교제폭력을 직접 규율하는 법률이 없는 현재로서는 형법과 스토킹처벌법 등 기존 법률을 사안에 맞게 조합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신고 단계부터 수사기관의 판단 구조를 이해하는 전문가와 함께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현행 제도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보호조치를 빠짐없이 검토해야 한다. '연인 사이의 일'로 넘기기보다 안전 확보를 우선에 두고 필요한 절차를 차례로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말 법률사무소 새율 강민기 대표변호사
최성민 더파워 기자 Sungmin@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