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칭범 지시에 대출금으로 금 구매 시도…세 차례 통화 끝 사기 확인
진술 불일치 포착해 2억6000만원 추가 피해 막은 사례도 공개
금융사기 피해액 2022년 7911억원→2025년 2조3755억원
11월 생성형 AI 모니터링 가동…통신정보 결합 차세대 FDS 구축 추진
이미지 확대보기12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융사기예방 기자간담회'에서 전재홍 금융사기예방 총괄수석이 진화하는 금융사기 수법과 주요 피해예방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더파워 이경호 기자] 이미 금융사기로 1억3000만원을 잃은 고객이 대출금 1억8000만원으로 금을 추가 구매해 범죄조직에 넘기려다 은행의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에 포착됐다. 담당 직원이 세 차례에 걸쳐 고객과 통화한 끝에 검찰 사칭 사기임을 확인하면서 추가 피해를 막았다.
우리은행은 12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금융사기예방 기자간담회’를 열고 실제 피해 예방 사례와 금융사기 대응체계 고도화 계획을 공개했다. 금융사기 피해가 발생한 뒤 돈을 되찾는 방식보다 송금 단계에서부터 위험거래를 찾아내 차단하는 데 대응의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공개된 사례 중 하나는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 피해였다. 고객은 이미 다른 금거래소를 통해 1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추가로 대출받은 1억8000만원으로 금을 구매하려 했다.
FDS가 이상거래를 탐지한 뒤 담당 직원이 고객에게 연락했지만 처음부터 사기 피해 사실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세 번째 통화에서야 사기범의 지시에 따라 거래하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됐고, 우리은행은 거래를 중단시키고 경찰 신고를 연계했다.
송금인과 수취인의 설명이 서로 달랐다는 작은 차이에서 2억6000만원의 추가 피해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한 고객 계좌에 2억9000만원이 입금된 뒤 3000만원이 의심계좌로 다시 이체되자 담당 직원이 자금 제공자와 수취인의 관계를 확인했다. 한쪽은 관계를 ‘조카사위’, 다른 쪽은 ‘조카’라고 설명했고, 은행은 진술이 맞지 않는 점을 포착해 계좌에 임시 조치를 취했다.
다른 금융회사와의 정보 공유가 피해 차단으로 이어진 경우도 공개됐다. 가족 계좌에서 받은 1억2000만원을 다른 은행으로 이체한 고객이 증권계좌의 8000만원까지 추가로 보내려 하자 FDS가 이상징후를 잡아냈다.
우리은행은 해당 은행과 정보를 공유해 수취계좌가 투자사기로 신고된 사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지급정지에 항의했던 고객도 이후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처럼 은행이 사전 차단에 힘을 싣는 배경에는 빠르게 커지는 금융사기 규모가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기 피해액은 2022년 7911억원에서 2025년 2조3755억원으로 3년 사이 약 3배로 늘었다.
수법도 달라지고 있다. SNS나 메신저로 피해자와 장기간 관계를 형성한 뒤 투자를 유도하는 ‘피그부처링’, 이미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 피해금 회수를 약속하며 다시 돈을 요구하는 ‘리커버리 스캠’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은 FDS와 자금세탁방지(AML), 금융권 공동 정보공유 플랫폼을 연계해 탐지·분석·공유로 이어지는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 4~8월 FDS가 AML 부서에 전달한 의심정보는 639건으로, 이 가운데 83건이 의심거래보고(STR)로 이어졌다. 같은 기간 AML 분석 과정에서 파악한 다른 은행의 의심계좌 664건도 금융권에 공유했다. 다만 해당 수치는 의심정보 전달과 보고·공유 건수로 실제 피해 차단 건수와는 구분된다.
다음 단계는 생성형 AI다. 우리은행은 오는 11월 신규 AI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연말까지 안정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존 금융거래 정보뿐 아니라 로그인 정보와 상품 이용 정보, 금융권 위험계좌 정보 등을 함께 분석하고 생성형 AI가 기존 탐지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금융사기 유형과 이상징후를 찾아 신규 탐지 시나리오 수립을 지원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통신정보와의 결합도 추진한다. 우리은행은 지난 8월 28일 LG유플러스와 금융·통신정보 실시간 연계를 완료했으며, 이를 차세대 FDS에 활용해 신종 금융사기에 대한 탐지 범위를 넓힌다는 방침이다.
금융사기 전문인력을 별도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재홍 우리은행 금융사기예방부 총괄수석은 경찰에서 24년간 금융범죄 수사와 국제공조 업무를 담당한 인물로, 우리은행은 경찰 출신 전문가를 중심으로 별도의 금융사기 예방팀을 두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현재는 계획 단계로 조직 신설 여부와 구성은 확정되지 않았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금융사기 예방은 고객의 자산뿐 아니라 금융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인 만큼 최우선 경영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며 "피해가 발생한 뒤 구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징후를 한발 앞서 포착해 고객의 자금이 사기범에게 넘어가기 전에 차단하는 예방체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