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제조업서 한국 경쟁력 하락 품목은 CPTPP 회원국 경쟁력 일제히 상승
자동차 하락 품목 수출비중 56.3%…승용차·전기차 3개 품목 역내 경쟁력 약화
조선은 한국 하락폭 -0.262·회원국 +0.125로 업종 중 격차 최대
한국, CPTPP 11개국 중 유일하게 멕시코와 특혜무역협정 없어…올해 관세 인상까지
[더파워 한승호 기자] CPTPP 가입을 놓고 그동안 국내 논의의 초점은 ‘가입하면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가입을 미루는 사이 한국 제조업의 역내 경쟁력은 약해지고 회원국의 경쟁력은 높아지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자동차는 멕시코 시장의 관세 격차까지 겹치며 비회원국에 머무르는 비용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업종으로 꼽혔다.
14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CPTPP 발효 전후 한국을 포함한 11개 회원국의 품목별 역내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경쟁력이 하락한 품목에서는 CPTPP 회원국의 경쟁력이 모든 업종에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번 분석은 CPTPP 발효 전인 2012~2018년과 발효 후인 2021~2024년의 대칭현시비교우위지수(RSCA)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RSCA는 특정 국가가 CPTPP 역내에서 해당 품목에 얼마나 특화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값이 높을수록 상대적인 경쟁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결과는 제조업 전반에서 엇갈렸다. 한국의 RSCA가 떨어진 품목을 따로 놓고 보면 CPTPP 회원국은 15개 업종 모두에서 경쟁력이 상승했다. 한국이 역내에서 상대적으로 밀린 품목에서 회원국은 반대로 입지를 확대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현상이 단순히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의 CPTPP 역내 RSCA가 하락한 2474개 품목 가운데 796개, 32.2%는 CPTPP 밖의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상승했다.
경쟁력 하락 폭에서도 차이가 뚜렷했다. 한국의 하락 품목 RSCA 변화폭 중앙값은 CPTPP 역내에서 -0.183이었지만 역외 시장에서는 -0.035에 그쳤다. 같은 한국 제품이라도 CPTPP 시장 안에서 경쟁력 약화가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의미다.
업종별로는 조선의 격차가 가장 컸다. 조선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하락한 품목은 최근 대CPTPP 수출의 43.9%를 차지했으며 이들 품목의 RSCA는 발효 전보다 0.2623 하락했다.
같은 품목에서 CPTPP 회원국의 RSCA는 오히려 0.1252 상승했다. 한국의 하락과 회원국의 상승 폭을 합치면 15개 제조업 가운데 가장 큰 차이다.
철강에서도 경쟁력 약화 범위가 넓었다. 한국의 RSCA가 하락한 철강 품목이 대CPTPP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8%에 달했다. 생활용품은 65.3%, 비금속광물제품은 60.9%, 자동차는 56.3%, 일반기계는 54.4%였다.
디스플레이는 분석 대상 4개 품목 모두에서 역내 RSCA가 하락했다. 다만 품목 수 자체가 적은 만큼 다른 업종과 단순 비교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자동차에서는 CPTPP 미가입에 따른 통상 조건의 차이가 보다 선명하게 나타났다. 한국 자동차 가운데 배기량 1000~1500㏄ 승용차, 1500~3000㏄ 승용차, 순수 전기자동차 등 3개 주요 품목에서 CPTPP 발효 후 역내 경쟁력이 뚜렷하게 약해졌다.
순수 전기차의 RSCA는 발효 전 0.8214에서 발효 후 0.4983으로 낮아졌다. 배기량 1000~1500㏄ 승용차는 0.2629에서 -0.0259로 떨어졌고, 1500~3000㏄ 승용차도 0.0788에서 -0.0440으로 내려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자동차 전체로 보면 한국의 경쟁력 하락 품목 RSCA는 0.1987 떨어진 반면 CPTPP 회원국은 0.0475 상승했다.
다만 자동차에서 회원국의 상승세는 CPTPP 국가 전체에 고르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국가별로 나눠보면 멕시코의 RSCA 상승폭이 0.312로 가장 컸고,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회원국은 오히려 -0.042를 기록했다. 자동차 경쟁구도 변화에서 멕시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의미다.
한국에는 이 부분이 더 민감하다. 한국은 분석 대상 CPTPP 11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멕시코와 특혜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국가다. CPTPP 회원국들이 협정을 통해 관세 혜택을 받는 동안 한국산 자동차는 멕시코에서 최혜국대우(MFN) 관세를 부담해왔다.
여기에 올해부터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생겼다. 멕시코가 지난 1월부터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의 일부 품목에 5~50%의 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등 일부 한국산 제품의 관세 측면 불리함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품 전체에서 가장 큰 경쟁력 하락을 기록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었다. 파라자일렌은 역내 RSCA가 0.7625에서 0.0195로 급락해 주요 수출품 가운데 하락폭이 가장 컸다.
다만 파라자일렌의 CPTPP 수출의존도는 0.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전기차 역시 RSCA가 크게 떨어졌지만 CPTPP 수출의존도 변화는 -0.4%포인트였다. 반면 배기량 1000~1500㏄ 승용차는 CPTPP 수출의존도가 7.6%포인트 감소해 실제 수출구조 변화까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반대 사례도 있었다. 인쇄회로는 역내 경쟁력이 낮아졌지만 CPTPP 수출의존도는 13.7%포인트 높아졌다. 폴리프로필렌과 백신도 각각 8.6%포인트가량 상승했다.
이는 RSCA 하락이 반드시 한국의 수출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의 CPTPP 수출이 증가했더라도 역내 전체 교역이 더 빠르게 커지면 한국의 상대적 점유 위치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CPTPP 발효가 한국의 경쟁력 하락을 직접적으로 일으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생산설비 확대나 개별 산업의 경기 변화, 공급망 재편 등 협정 밖의 요인 역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쟁력이 하락한 품목에서 CPTPP 회원국의 역내 경쟁력이 공통적으로 높아졌고, 역외보다 역내에서 한국의 하락폭이 더 컸다는 점은 비회원국 지위에 따른 경쟁여건 차이를 가볍게 보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자동차처럼 실제 관세 조건에서 회원국과 한국의 차이가 존재하는 품목은 상황이 다르다. 멕시코의 추가 관세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CPTPP 가입 여부와 별개로 통상조건 격차를 줄일 대응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산업연구원은 멕시코와의 통상관계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품목별 경쟁력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기업에 관세와 원산지 정보를 제공하는 후속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
결국 CPTPP를 둘러싼 계산법도 달라지고 있다. 가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출과 시장개방 효과만 따지는 단계에서 벗어나, 가입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될 때 한국 기업이 경쟁국보다 불리한 관세와 시장접근 조건을 얼마나 오래 감수해야 하는지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CPTPP 회원국이 역내 공급망과 관세 혜택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동안 한국의 주요 제조업에서 상대적인 입지가 약화되는 징후가 나타난 만큼, CPTPP 문제는 이제 ‘가입의 이득’뿐 아니라 ‘미가입의 비용’이라는 관점에서도 따져봐야 할 사안으로 바뀌고 있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hansh1975@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