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김영록 300만원, 강기정 200만원 전달" 구체적 증언 나와
[더파워 이용훈 기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불법 로비 의혹이 여의도를 넘어 지방자치단체,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심장부인 전남 정치권까지 강타했다. 통일교의 조직적인 '정치후원금' 의혹의 경찰 수사 전선이 넓어지는 가운데, 현직 광역단체장인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의 실명이 법정에서 구체적인 액수와 함께 거론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개인적 후원이 아닌, 교단 차원의 치밀한 '정치권 관리'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가 초대형 '통일교 게이트'로 비화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학자 통일교 총재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계기가 됐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통일교 간부들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교활동 지원금' 명목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원금을 살포했다고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호남 광역단체장들의 이름이 특정됐다는 점이다. 통일교 측은 김영록 전남지사에게 300만원,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200만원을 각각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국민의힘 김진태 강원지사(500만원) 등 야권 인사뿐만 아니라,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호남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통일교의 '관리 대상'에 포함돼 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번 의혹의 핵심은 '쪼개기 후원'이다. 정치자금법상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후원금을 낼 수 없다. 통일교 측은 이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다수 신도의 명의를 차용, 소액으로 나누어 입금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 문건과 재판 증언을 종합하면, 통일교는 후원금 한도가 연간 500만원이라는 점을 악용해 개별 위원회 별로 액수를 조정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한기호 의원이나 유상범 의원에게 거액(2000만원)을 전달하려다 실패하거나 액수가 축소된 정황 역시, 이들이 법적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성의'를 표하려 애썼음을 보여준다.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김 지사와 강 시장 측은 즉각 선을 그었다. 김 지사 측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개인이 보낸 후원금이 통일교 자금인지 알 방법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고, 강 시장 측 역시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물론 정치인이 수많은 소액 후원자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통일교 내부 문건인 '특별보고'와 관계자들의 일관된 진술은 이 후원이 조직적으로 기획됐음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통일교의 로비 총괄책으로 지목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정치인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순히 "몰랐다"는 해명만으로 의혹을 털어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통일교가 아무런 연고나 사전 교감 없이 유력 정치인에게, 그것도 조직적으로 자금을 살포했을 리 만무하다"며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후원금의 출처와 성격을 둘러싼 도덕적 책임론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의 칼끝은 이제 통일교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다. 경찰은 통일교 본부 압수수색에 이어, 정치인 접촉 창구로 의심받는 '천주평화연합(UPF)'까지 수사 선상에 올렸다. 24일에는 자금 흐름의 키맨인 조모 전 총무처장을 소환 조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당초 정치인 3인(전재수, 임종성, 김규환)에 국한됐던 통일교 수사는 이제 호남의 광역단체장을 대상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호남 정치권은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일교 리스크'가 내년 지방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용훈 더파워 기자 1287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