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한승호 기자] 우리나라 수출이 미국 관세 인상 등 어려운 통상환경에도 사상 처음 70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품목별 경쟁력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16일 ‘주요 품목별 수출 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통해 최근7년간 철강·기계의 수출 경쟁력은 약화된 반면 자동차·반도체는 오히려 강화됐다고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은 3.8% 늘어나며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외형 성장과 달리 글로벌 수출 점유율은 2018년 이후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수출 증가도 일부 품목에 집중돼 나머지 품목들은 뚜렷한 성장 없이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은은 수출 점유율 하락 요인을 가려내기 위해 수출 대상국의 수입 수요 여건을 통제한 뒤, 2018∼2024년 주요 수출 품목의 경쟁력을 공급 측면에서 분석했다. 이를 통해 개별 품목의 경쟁력을 의미하는 ‘품목 경쟁력’과 국가·지역별 점유를 보여주는 ‘시장 경쟁력’을 따로 산출해 철강·기계, 화학공업제품, 석유제품, 자동차,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의 변화를 평가했다.
분석 결과 철강·기계는 같은 기간 품목·시장 경쟁력이 모두 떨어졌다. 철강은 2010년대 중반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과 부동산 경기 둔화로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서 중국산 저가 제품이 세계 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영향이 컸다. 기계 역시 중국이 범용기계를 낮은 가격에 수출하고 기술 수준까지 끌어올리면서 한국산 제품의 입지가 좁아진 것으로 평가됐다. 진찬일 한국은행 국제무역팀 과장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제도 본격 시행으로 철강 업종의 통상비용이 더 늘어나면 유럽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시장 경쟁력이 추가로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공업제품은 중국 석유화학 설비 증설과 미국 셰일가스 부산물 기반 범용제품 확대로 압박을 받았지만, 특수제품 비중을 꾸준히 늘리면서 품목 경쟁력은 개선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대중 수출의 경우 2022년 이후 중국 내 배터리 소재 등 관련 품목의 자급률이 높아지며 시장 경쟁력이 약해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석유제품은 국내 정유사들의 설비 고도화 효과로 2022년 이후 품목 경쟁력이 크게 개선됐고, 주요 수출 시장의 수요도 회복세를 보이며 수출 여건이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는 같은 기간 해외 생산 확대 영향으로 시장 경쟁력은 일부 약화됐지만, 품목 경쟁력은 뚜렷하게 높아졌다. 2010년대 말부터 고급 브랜드를 앞세워 품질을 끌어올리고, 내연기관차와 별도로 전용 전기차 플랫폼을 구축한 전략이 2022∼2024년 전기차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반도체의 경우 국내 메모리 업체들이 HBM(고대역폭메모리), DDR5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를 경쟁국보다 앞서 개발·상용화하면서 품목 경쟁력이 한 단계 도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2022∼2024년에는 중국·동남아를 중심으로 시장 경쟁력이 떨어졌는데,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현지 업체들이 메모리 양산 능력을 키우며 범용 제품 위주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 과장은 “철강과 일부 화학공업제품처럼 경쟁력이 약화된 품목은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을 계기로 기술 고도화와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에 집중해야 한다”며 “반도체·자동차 등 우위를 확보한 품목은 연구·개발(R&D) 지원과 기술 보안을 강화해 격차를 더 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보호무역 강화 흐름에 대응해 자유무역협정(FTA) 등 무역 네트워크를 넓혀 통상 비용을 낮추고, 우리 기업의 시장 경쟁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