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경기하강 우려는 진정, 에너지·노동시장·지정학 리스크는 ‘발목’
[더파워 한승호 기자]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경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OECD 회원국 경제단체들이 올해 상반기에도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보면서도 급격한 경착륙에 대한 공포는 한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는 OECD 경제산업자문위원회(BIAC)의 '2025 경제정책 조사' 결과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특히 인공지능(AI) 등 혁신 분야를 중심으로 뚜렷이 개선됐다고 21일 밝혔다.
한경협에 따르면 BIAC에는 한경협을 포함해 38개국 경제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조사에는 이 가운데 OECD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의 93.5%를 차지하는 29개국 경제단체가 응답했다. 응답 단체의 59.6%는 올해 상반기 세계 경제를 ‘경기 침체 지속’으로 전망했으며, 39.8%는 ‘완만한 성장’을 예상했다.
지난해 하반기 조사에서 절반(49.5%)을 차지했던 ‘급격한 경기 위축’ 응답이 이번에는 0.6%로 급감해, 가파른 경기 하강에 대한 공포는 상당 부분 진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영 환경에 대한 평가는 ‘보통’이 57.3%로 가장 많았고, ‘좋음’ 20.3%, ‘나쁨’ 16.4% 순으로 집계돼 전반적으로 신중한 시각이 유지됐다.
한경협은 이런 응답 흐름에 대해 미·중 갈등, 지역 분쟁, 통상 갈등 등 무역·통상과 지정학적 충격이 단기 변수라기보다 중장기 비용 요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이 고비용·고불확실성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의 추가 관세 조치 등 통상 리스크는 산업·국가별 협상을 거치며 일부 완화됐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갈등으로 급등했던 국제 에너지 가격도 비(非)OPEC 국가 증산 등으로 전년에 비해 진정 조짐을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투자 전망은 크게 돌아섰다. 지난해 하반기 조사에서 응답 단체의 74.9%가 ‘투자 감소’를 예상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78.1%가 올해 상반기 ‘투자 증가’를 전망했다. 특히 AI,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혁신 분야는 응답자의 94.2%가 ‘투자 확대’를 예상해 전략 산업에 대한 선별 투자 강화 흐름이 뚜렷했다.
다만 응답 단체의 51.6%가 올해 인플레이션 상승을 전망해, 임금·금융비용·원자재 가격 등 비용 압력이 실제 투자 집행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한경협은 이러한 인식이 OECD가 올해 세계 경제의 주요 하방 위험으로 인플레이션 압력 재부상,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재정 여건 악화를 지목하는 동시에 AI 투자에 따른 생산성 개선을 제한적인 상방 요인으로 평가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복수 응답)으로는 ‘지정학 리스크’가 85%로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높은 에너지 가격 및 공급 불안’(81.6%), ‘노동시장 경색·미스매치’(78.5%), ‘무역·투자장벽’(74.4%) 순으로 응답이 집중됐다.
에너지 수급과 노동시장 요인을 제약 요인으로 지목한 비율은 직전 조사 대비 3배 이상 늘어, 에너지 안보와 인력난 문제가 기업들의 체감 리스크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규제 부담’ 역시 응답자의 34.5%가 꼽아, 대외 여건뿐 아니라 각국 국내 제도 환경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드러났다.
성장 전략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직전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로 꼽혔던 ‘무역 자유화’ 대신 이번 조사에서는 ‘에너지 접근성 확보’가 88.4%로 1위를 차지했다. ‘노동시장 참여 제고’ 역시 65%로, 직전 조사(19%)보다 3배 이상 중요성이 높아졌다.
한경협은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산업 수요에 맞는 노동력 확충이 향후 성장 잠재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OECD는 별도 분석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이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며, 노동시장 수요에 맞춘 직업교육·재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BIAC는 보고서에서 “대외 통상·금융 여건 제약과 지정학적 리스크로 글로벌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각국의 구조개혁 노력과 함께 무역·투자 촉진을 위한 환경 조성과 글로벌 규제 조율을 위해 OECD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글로벌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기업 투자, 특히 혁신 분야 투자 전망이 뚜렷하게 반등했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투자 수요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려면 과감한 규제 개선과 산업 수요에 맞는 인력 확충,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가 관건이며, 한국이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