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한승호 기자] 저성장과 고환율 여파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년 만에 다시 줄어든 가운데, 반도체 호황을 앞세운 대만은 22년 만에 한국을 추월해 4만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국가데이터처는 한국의 지난해 1인당 GDP가 3만6107달러로 전년보다 0.3%(116달러) 감소해 3만6천달러대를 간신히 유지한 것으로 추산됐으며, 반면 대만은 같은 기간 3만8748달러 수준으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11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 9일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 지난해 경상성장률을 3.8%로 제시했다. 이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 제시된 2024년 경상GDP(2556조8574억원)에 적용하면 지난해 경상GDP는 2654조180억원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 1422.16원을 반영하고 장래인구추계 상 총인구 5168만4564명으로 나누면 1인당 GDP가 3만6107달러로 산출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환산한 지난해 한국의 달러 기준 경상GDP는 1조8662억달러로 전년보다 0.5% 줄어 2022년 이후 3년 만에 감소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016년 3만839달러로 처음 3만달러를 넘은 뒤 2018년 3만5359달러까지 늘었지만, 팬데믹 충격 등으로 2020년 3만3652달러까지 밀려난 바 있다. 2021년에는 경기 부양과 수출 호조에 힘입어 3만7503달러로 반짝 반등했으나, 물가 급등과 금리 인상이 겹친 2022년 3만4810달러로 다시 주저앉았다. 지난해 실질 GDP 성장률은 1.0%에 그쳐 2020년(-0.7%)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평균 원/달러 환율도 전년 1363.98원에서 58.18원(4.3%) 오른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내 달러 환산 GDP를 더욱 짓눌렀다.
올해는 정부 전망대로 성장이 이뤄질 경우 1인당 GDP가 5년 만에 다시 3만7천달러대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이 지난해 평균과 비슷한 1422원 안팎에서 움직일 경우 1인당 GDP는 3만7932달러, 원/달러 환율이 1400원까지 내려가면 3만8532달러로 3만8천달러선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성장률과 환율 모두 대외 변수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경기 둔화 심화나 환율 재급등 시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대만의 1인당 GDP는 이미 한국을 앞서고 있다. 대만 통계청은 지난해 11월 말 경제전망에서 자국의 지난해 1인당 GDP가 3만8748달러에 이를 것으로 제시했다. 이는 한국의 지난해 1인당 GDP 추정치(3만6107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대만 통계청은 2023년 3만2444달러, 2024년 3만4238달러, 2025년 3만8748달러에 이어 올해 4만921달러를 기록해 4년 연속 증가하고, 4만달러를 처음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미국 달러당 대만 달러는 2024년 말 32.805달러에서 지난해 말 31.258달러로 소폭 하락하는 등 통화가치 역시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대만의 가파른 성장 배경으로는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급증한 반도체 수출이 지목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를 중심으로 대만 기업들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에 고성능 반도체를 공급하며 AI 서버 시장의 핵심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다. 노무라는 최근 아시아 경제 보고서에서 지난해 AI 관련 상품이 대만 전체 상품 수출의 65% 이상을 차지했다고 분석하며,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AI 설비 투자 붐의 수혜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 8곳이 제시한 대만의 올해 실질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4.0%로, JP모건(5.6%), HSBC(5.2%), 뱅크오브아메리카(4.5%), 골드만삭스·노무라(각 4.4%)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 전망을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발표에서 한국의 1인당 GDP 순위가 2024년 세계 34위에서 2025년 37위로 세 계단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대만은 38위에서 35위로 올라 한국을 한 계단 앞설 것으로 예상됐다. 일본은 3만4713달러로 한국·대만보다 낮은 40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으며, 세계 1위는 23만171달러의 리히텐슈타인, 이어 룩셈부르크(14만6818달러), 아일랜드(12만9132달러), 스위스(11만1047달러)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 2003년 1인당 GDP 1만5211달러로 대만(1만4041달러)을 처음 앞선 뒤 22년 만에 순위가 뒤바뀐 만큼, 성장잠재력 확충과 산업·환율 구조 개선 과제가 한층 무겁게 제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