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올해 신규 유틸리티급 태양광 43.4GW 계획…AI·반도체 전력 수요 대응 핵심축
폴리실리콘, 태양광 넘어 반도체·방산 공급망과 연결…미국 내 생산 필요성 확대
12월 4일부터 Section 232 조치 시행…최저수입가격·추가 관세로 탈중국 가속
정책 따라 흔들리던 산업서 전략산업으로…"2027년 공급망 재편 본격화 가능성"
[더파워 이경호 기자] 미국 태양광 산업을 움직이는 논리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태양광의 가치는 탄소 감축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맞춰졌지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대규모 전력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산업 공급망을 지키는 국가안보 문제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태양광의 출발점인 폴리실리콘이 반도체와 방산 산업에도 연결되면서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한층 구체화됐다. 미국 정부는 오는 12월 4일부터 폴리실리콘과 관련 제품에 최저수입가격(MIP)과 추가 관세를 적용할 예정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태양광 산업은 AI·반도체 전력 수요 확대를 계기로 단순한 친환경 산업에서 전략산업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력과 AI, 반도체, 국방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전력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새로 건설될 예정인 유틸리티급 태양광 발전은 43.4GW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60% 증가하는 규모로 미국의 신규 발전설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일반 산업시설보다 막대한 전력을 사용한다. 전력망 증설과 신규 발전소 건설이 AI 산업의 속도를 결정하는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건설 기간이 짧은 태양광의 전략적 가치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과거에는 태양광 수요를 금리와 보조금, 친환경 정책 변화가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가 새로운 수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태양광이 반도체와 직접 연결되는 지점은 폴리실리콘이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모듈의 핵심 원료이면서 고순도 제품은 반도체 웨이퍼 생산에도 사용된다. 미국 백악관도 지난 8월 폴리실리콘 수입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반도체와 태양광 공급망 모두의 기반 소재라는 점을 명시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가 레이더와 통신장비, 전자전 시스템, 미사일·드론의 유도 및 제어 등 국방 체계에 필수적이라는 점도 정책 근거로 제시했다.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산업을 유지해야 반도체용 고순도 폴리실리콘 생산 기반도 함께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미국의 태양광 공급망 정책을 단순한 친환경 보조금 정책으로 보면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양광 시장을 지키는 문제가 반도체 업스트림과 국방용 전자부품 생산기반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자국 공급망 구축은 규제 수준을 넘어 가격과 투자 구조까지 건드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6일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폴리실리콘과 파생제품 수입을 조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미국 정부는 수입 증가로 자국 폴리실리콘 생산기반이 약화돼 국가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조치는 오는 12월 4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미국은 폴리실리콘에 kg당 21달러, 잉곳·웨이퍼에 kg당 100달러, 태양전지에 와트당 0.22달러, 모듈에 와트당 0.38달러의 최저수입가격을 설정했다. 일부 폴리실리콘 파생제품에는 15%의 추가 관세도 부과한다.
동시에 미국 내 폴리실리콘과 잉곳, 웨이퍼, 셀 생산시설 투자를 유도하는 온쇼어링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미국 내 생산능력을 갖춘 기업에는 일정 요건 아래 생산설비와 관련 제품 수입에 대한 관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은 단순히 중국산 제품을 비싸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낮은 가격의 수입품이 미국 시장 가격을 끌어내리는 것을 막고, 동시에 자국 내 업스트림 생산시설이 일정 수준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짜는 구조에 가깝다.
미국의 태양광 공급망 취약성도 정책을 밀어붙이는 배경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의 글로벌 폴리실리콘 생산능력 점유율은 2005년 50%에서 2024년 2% 미만으로 떨어졌다. 태양광 잉곳과 웨이퍼, 셀 역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태다.
반대로 글로벌 폴리실리콘 생산은 2020년 이후 270% 넘게 늘었고 2024년 말 재고는 40만톤까지 증가했다.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 미국 제조업체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최근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중국 태양광 규제 완화 가능성도 이전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관계 개선 과정에서 일부 관세 조정이 이뤄지더라도 폴리실리콘과 태양광 공급망은 미국이 이미 국가안보 문제로 규정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규제 완화 여부를 단순한 무역협상 카드로만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태양광 공급망의 탈중국·국산화가 정치적 환경 변화에도 과거보다 지속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중 협상 결과와 실제 세부 규정 변화는 향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태양광 업체 입장에서는 12월 4일이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최근 관련 업체 주가는 금리 상승에 따른 태양광 수요 둔화 우려와 단기 실적 부담, 미중 관계 불확실성 등이 겹치면서 약세를 보였다. 반면 Section 232 조치가 실제 시행되면 수입가격 하단이 높아지면서 미국 내 태양광 밸류체인의 가격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최저수입가격은 공급과잉으로 제품가격이 급락했던 기존 시장 구조에 직접 영향을 준다. 가격 하락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 내 폴리실리콘과 웨이퍼·셀 생산시설의 수익성도 이전보다 개선될 여지가 생긴다.
금융투자업계가 2027년 이후 태양광 산업을 다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요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자체가 중국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하나증권은 미국 내 태양광 공급망 재편 수혜 가능성을 근거로 OCI홀딩스와 한화솔루션을 주요 관심 기업으로 제시했다. OCI홀딩스는 목표주가 55만원, 한화솔루션은 6만원을 제시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태양광 산업의 의미가 "단순히 탈탄소를 넘어 미중 패권경쟁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진화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미국 태양광 산업의 다음 사이클은 패널을 얼마나 많이 설치하느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는 전력이 필요하고, 반도체에는 폴리실리콘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다시 국방과 첨단산업으로 연결된다. 미국이 태양광 공급망을 자국 안에 두려는 이유가 '탄소 감축' 하나에서 '전력과 산업 안보'로 넓어진 셈이다.
오는 12월 4일 시행되는 Section 232 조치는 그 변화가 실제 가격과 투자로 넘어가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태양광이 정책에 따라 흔들리는 친환경 산업에서 AI와 반도체를 떠받치는 전략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향후 미국 공급망 재편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