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종사자 1만명당 로봇 1066대…활용 수준 세계 최고
산업경쟁력 72.9점으로 일본·독일·중국 등에 뒤져
핵심부품 국산화율 44%…국내 로봇기업 97.9% 중소기업
중국 세계 제조용 로봇 수요 58.7% 차지…AI·양산 경쟁 심화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4월 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자율제조AI 월드쇼에서 참관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더파워 한승호 기자] 한국은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을 가장 촘촘하게 활용하는 국가지만 정작 로봇산업 자체의 경쟁력은 주요 제조 강국에 크게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역량을 확보했지만 핵심부품과 소프트웨어, 대규모 생산 및 해외시장 진출을 뒷받침할 산업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글로벌 로봇산업의 경쟁 구도 재편과 한국의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의 로봇 밀도는 제조업 종사자 1만명당 1066대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대수도 세계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산업연구원이 전문가 조사를 통해 평가한 제조용 로봇산업 종합경쟁력은 72.9점으로 비교 대상 6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국가별 경쟁력은 일본이 95.5점으로 가장 높았고 독일 88.4점, 미국 80.6점, 스위스 79.5점, 중국 79.4점 순이었다. 한국은 일본보다 22.6점, 중국보다도 6.5점 낮았다. 산업연은 중국이 대규모 내수시장과 기술 내재화, 양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2023년 한국을 추월한 이후 경쟁력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약점은 로봇의 성능과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부품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드러났다. 한국의 부품·소프트웨어 조달 경쟁력은 64.0점으로 일본(98.8점), 독일(89.0점), 중국(76.0점)에 미치지 못했다. 연구개발·설계 부문도 70.0점, 생산 부문은 72.0점에 그쳤다. 감속기와 서보모터, 센서, 제어기 등 국내 로봇 핵심부품의 국산화율은 약 44% 수준이다.
기업 규모 역시 산업경쟁력 확보에 걸림돌로 지목됐다. 2024년 로봇산업 실태조사에서 국내 로봇 사업체는 2509개사였지만 전체의 97.9%가 중소기업으로 나타났다. 로봇 매출액 100억원 이상 기업은 3.2%에 불과했다. 산업연은 이러한 구조가 장기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투자, 글로벌 시장 개척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산업 기반이 취약한 사이 세계 로봇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대수는 60만3307대로 전년보다 11.3%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9년에는 약 80만6000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 서비스용 로봇 역시 지난해 24만9925대가 판매돼 전년 대비 24.1% 성장했다.
특히 중국의 시장 지배력이 두드러진다. 2025년 세계 제조용 로봇 신규 판매량 가운데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58.7%에 달했다. 미국 6.4%, 일본 6.0%, 한국 5.0%, 독일 4.1%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수요를 기반으로 자국 기업의 기술개발과 현장 실증, 대량생산 경험을 동시에 축적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의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로봇의 정밀도와 작업 속도, 가격이 주요 경쟁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산업현장 데이터, 핵심부품, 양산 능력을 결합하는 종합적인 산업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AI·반도체·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고성능 자율로봇과 휴머노이드 개발을 확대하고, 중국은 제조 기반과 부품 공급망, 대규모 실증을 활용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로봇과 AI의 결합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사업 재편도 촉진하고 있다. 제조용 로봇업체 화낙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로봇의 작업환경을 가상공간에 구현하고 이를 AI 학습과 생산 검증에 활용하고 있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로봇의 판단과 제어 성능 개선에 연결하는 피지컬 AI가 새로운 경쟁 분야로 부상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로봇사업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며 휴머노이드 등 차세대 기술 확보에 나섰고, LG전자는 베어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해 서비스로봇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미국 자동화 솔루션 기업 원엑시아를 인수해 북미 현지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로봇산업이 개별 기업의 신사업을 넘어 주요 그룹의 미래 성장 분야로 자리 잡는 흐름이다.
정부 역시 로봇 보급 확대에서 산업화 기반 구축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에서는 AI 로봇 글로벌 3강과 2030년 피지컬 AI 글로벌 1강을 목표로 제시했다. 제조업 AI 전환(M.AX), 핵심 요소기술 확보(Master), 양산 체계 구축(Mass Production)을 연결한 '3M 전략'을 통해 기술개발과 실증, 생산을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산업연은 대기업의 투자 확대와 정부 지원만으로 로봇산업의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핵심부품과 지능형 소프트웨어의 기술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실제 제조현장에서 발생하는 작업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AI 학습과 제품 성능 개선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개발 단계에서 확보한 기술이 양산과 수출로 이어지도록 전문 로봇기업의 성장 경로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단순한 기술 시연이나 로봇 보급 대수보다 실제 현장의 작업 성공률과 가동시간, 생산성 향상, 작업당 비용 등을 검증하고 이를 초기 구매와 생산설비 투자로 연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중 공급망 재편에 대응한 해외 진출 전략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산 로봇과 부품을 대체하려는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이 핵심부품과 AI 소프트웨어, 산업별 솔루션을 결합해 글로벌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활용 경험과 제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국내 기술과 제품, 기업의 경쟁력으로 충분히 전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로봇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로봇을 보급했는지가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를 얼마나 국내 기업의 생산·수출 역량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