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벨버디어, 도로 통제에 방문 자제 선제 안내…17~18일 위약금·벌점 면제
한화오션도 휴일 출근 제한…김승연 회장 ‘안전 최우선’ 원칙 다시 주목
[더파워 이경호 기자] 광복절 연휴 경남 거제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자 한화가 내놓은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숙소가 영업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보다 고객이 그곳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지를 먼저 봤다.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는 예약 고객들에게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먼저 안내했고, 취소에 따른 위약금도 받지 않았다.
거제에는 지난 광복절 연휴 사흘간 900㎜ 안팎의 기록적인 비가 내렸다. 특히 16일 밤부터 17일 새벽 사이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주택·차량 고립, 도로 통제, 하천 범람 등이 잇따랐다. 주요 도로와 대중교통 운행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숙박시설까지 이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 됐다.
한화리조트는 이 상황에서 거제 벨버디어 내 르 씨엘의 17~18일 방문 예정 고객에게 먼저 방문 자제를 요청했다. 예약을 취소한 고객에게는 위약금을 전액 면제하고 벌점도 부과하지 않았다. 고객이 원하면 다른 지역 숙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대체 방안도 마련했고, 도로 상황에 따라 위약금 면제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리조트 자체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느냐가 판단 기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숙소가 정상 운영되더라도 산사태와 침수로 이동 경로가 위험하다면 고객을 받지 않는 쪽을 택했다. 성수기 숙박업에서는 당일 취소가 곧 매출 손실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규정보다 안전을 앞세운 셈이다.
실제 거제 지역에서는 같은 재난을 두고 숙박업체별 대응이 엇갈렸다. 일부 이용객들은 도로가 통제된 상황에서도 전액 환불을 받지 못했거나 예약금의 상당 부분을 취소 수수료로 부담했다는 경험을 온라인에 올렸다. 반면 한화리조트는 고객이 환불 여부를 묻기 전에 방문 자제와 위약금 면제 방침을 먼저 알리면서 차이를 보였다.
폭우로 발이 묶인 투숙객을 챙겼다는 후속 이야기도 퍼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리조트 측이 이동이 어려워진 투숙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체크아웃 이후에도 고객들이 무사히 귀가했는지를 확인했다는 내용이 공유됐다. 공식적인 위약금 면제 조치에 이런 현장 대응 사례가 더해지면서 "규정보다 사람을 먼저 봤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안전을 이유로 멈춰 세운 것은 리조트뿐만이 아니었다. 거제에 사업장을 둔 한화오션도 17일 집중호우로 도로 곳곳이 통제되자 전사방재종합상황실을 통해 직원들에게 출근 제한을 알렸다. 휴일 특근에 차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동 자체를 막은 것이다. 사업장 일부 생산라인과 변전시설, 도로 등이 침수됐지만 인명 피해나 주요 시설물 파손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오션의 안전 강화 움직임은 폭우 이전에도 이어졌다. 회사는 올해 2월 노사 합동 온열질환 예방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폭염이 절정에 이르는 여름철에는 체감온도와 관계없이 오전과 오후 각각 10분의 추가 휴게시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생산성보다 작업자의 건강을 우선하겠다는 취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반복해서 강조해온 ‘안전 최우선’ 원칙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회장은 2024년 창립기념사에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라며 안전을 타협할 수 없는 가치로 제시했다. 지난해 창립기념사에서도 안전을 기술이나 전략보다 앞서는 본질적인 경쟁력으로 규정했다.
올해 3월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됐을 때도 같은 원칙이 확인됐다. 김 회장은 중동 현지 임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안전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한화는 당시 현지 임직원과 가족의 위치·이동 상황을 점검하고 비상 연락망을 가동했다.
재난 발생 이후 피해 지역을 돕는 행보도 꾸준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7월 경남 산청과 경기 가평 등 집중호우 피해 지역 복구를 위해 성금 20억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했다.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은 피해 고객의 보험료 납입과 대출 상환을 유예했고, 한화오션은 산청 수해복구 현장에 차량과 식사를 지원했다.
이번 거제 폭우에서 한화의 대응이 주목받은 이유는 거창한 구호보다 실제 선택에 있었다. 조선소에서는 직원들을 출근시키지 않았고, 리조트에서는 고객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 예약 취소와 생산 차질이라는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는 쪽을 택했다.
기업이 ‘안전 최우선’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성수기 객실이 걸려 있고 생산 일정이 걸린 순간에도 같은 판단을 내리는지는 다른 문제다. 900㎜ 안팎의 물폭탄이 쏟아진 거제에서 한화가 보여준 대응이 온라인에서 미담으로 번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는 "안전이 먼저"라는 말이 문구가 아니라 현장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