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표시상품에 ‘평균량 기준’ 도입…평균 내용량 표시량 이상이어야
반도체·이차전지·항공·방산 등 산업계량 지원 법적 근거 신설
대형 저울 등 검사절차 탄력 적용…상거래용 저울 검사 민간 위탁 허용
[더파워 한승호 기자] 우유나 과자처럼 포장지에 용량이나 질량을 표시해 판매하는 상품은 앞으로 개별 제품의 허용오차뿐 아니라 전체 상품의 평균 내용량도 표시량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항공·방산 등 첨단산업의 초정밀 측정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계량’ 개념도 법률에 새로 도입된다.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산업계량 정책을 강화하고 법정계량기와 정량표시상품의 관리체계를 개선하는 내용의 ‘계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계량법이 산업환경과 소비시장 변화를 반영해 대폭 손질된 것은 2000년 전면 개정 이후 25년 만이다.
이번 개정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산업현장의 정밀측정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제조와 공정, 시험, 품질관리 등 산업현장에서 양의 값을 결정하기 위해 이뤄지는 일련의 작업을 ‘산업계량’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정부가 산업계량 활성화를 위해 교정기준을 개발·보급하고 기업의 측정관리시스템 구축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측정기술의 보급과 교육, 측정 신뢰성 향상 사업도 정부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업종별 산업계량 연구개발과 기업 지원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산업계량지원센터’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도 신설됐다. 첨단산업의 기술 경쟁력이 미세한 오차를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측정기술 자체를 산업 경쟁력의 기반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반도체와 이차전지, 항공·방산 등 초정밀 측정이 필요한 첨단산업에서 활용도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중견기업이 개별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고성능 측정장비와 기술, 전문인력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소비자가 일상에서 접하는 정량표시상품의 관리기준도 강화된다. 현재는 우유와 과자 등 용량이나 질량을 표시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개별 상품별 법적 허용오차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개정법은 여기에 ‘평균량 기준’을 추가한다. 같은 상품 여러 개를 생산·판매할 경우 개별 제품에는 일정 범위의 오차를 허용하더라도 전체 제품의 평균 내용량은 제품에 표시한 양과 같거나 많아야 한다.
예를 들어 100g으로 표시한 상품이라면 개별 상품 가운데 허용오차 범위에서 100g에 다소 못 미치는 제품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상품의 평균 내용량은 최소 100g 이상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량표시상품 관련 규정을 위반한 상품을 공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새로 마련됐다. 국표원은 이를 통해 소비자가 표시된 양만큼 상품을 구매할 권리를 강화하고 사업자가 내용량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계량기 관리 방식도 기기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바뀐다. 현재 법정계량기는 원칙적으로 형식승인과 검정, 재검정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0톤 이상 비자동저울이나 눈새김 탱크처럼 기기의 크기와 구조, 설치환경 때문에 기존 절차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개정법은 이런 계량기에 대해 일부 절차를 면제하거나 재검정을 교정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법정계량기에 해당하지 않는 제품에 대한 구분도 명확해진다. 가정용이나 교육용 등으로 사용돼 법정계량기 범주에서 제외된 계량기는 상거래용 또는 증명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소비자가 일반 가정용 저울 등을 상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공인 계량기로 오인하는 일을 방지하고 실제 거래에 사용되는 계량기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상거래용 저울의 정기검사 체계도 바뀐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수행하는 상거래용 저울의 2년 주기 정기검사를 앞으로는 일정 요건을 갖춘 민간 전문기관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 계량검사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 근거도 마련됐다. 법정계량기와 정량표시상품 관리가 전문화되고 새로운 측정기술이 빠르게 등장하는 만큼 현장 검사 인력의 전문성을 함께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으로 계량정책의 범위는 기존 상거래 중심에서 산업현장의 품질과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영역으로 확대된다. 동시에 소비자가 일상에서 접하는 포장상품의 실제 내용량과 계량기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리체계도 강화된다.
김대자 국가기술표준원장은 “이번 법 개정은 상거래 중심의 계량 제도를 첨단 산업의 품질 신뢰성 지원으로까지 확장하고 변화된 산업·소비 환경에 맞게 계량제도 전반을 정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산업계량 기반을 강화하고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계량 신뢰를 높이는 데 정책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hansh1975@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