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자체보다 이란발 유가와 연준 금리경로가 달러 핵심 변수
AI 신용우려·프랑스 재정불안은 단기 안전자산 선호 자극
반도체 수출·무역흑자·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주환원은 원화 강세 요인
[더파워 이경호 기자] 달러가 다시 갈림길에 섰다. 미국 중간선거와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신용 우려, 프랑스 재정 불안,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를 밀어 올릴 요인이 늘었지만, 이들 불확실성이 완화될 경우 방향은 오히려 달러 약세로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화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무역수지 흑자 확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주환원에 따른 달러 환전 수요가 원화 강세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iM증권은 10월 30일 1334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1개월 뒤 1320원, 올해 4분기에는 1300원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달러화지수는 101.88에서 100.3을 거쳐 99.0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에는 달러 강세를 자극할 재료가 적지 않다. 중간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에 AI 기업들의 신용위험 우려가 더해졌고, 프랑스에서는 재정문제가 유로화 약세 요인으로 부상했다. 이란 관련 군사적 긴장과 국제유가 상승도 달러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변수다.
다만 중간선거 결과 자체가 달러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과거 사례에서 중간선거와 달러화 사이에 뚜렷한 방향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 이후 중간선거 직전 10월 말부터 다음해 6월 말까지 달러화지수 움직임을 보면 상승과 하락이 반복됐다. 해당 기간 평균 등락률은 -0.59%로 선거 결과만으로 달러 방향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주식시장은 달랐다. 1942년 이후 21차례의 중간선거를 기준으로 선거 직전 10월 말부터 다음해 6월 말까지 S&P500지수는 21차례 모두 상승했다. 평균 상승률은 16.62%였다.
iM증권은 중간선거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줄어들 경우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가 회복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위험자산 선호가 강해지면 안전자산 수요가 약해지면서 달러에는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의 방향을 결정할 더 큰 변수로는 국제유가가 꼽혔다.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해 유가가 추가 상승하면 미국 물가 압력이 다시 높아지고 연방준비제도의 긴축 종료 시점도 늦춰질 수 있다.
반대로 이란 관련 긴장이 진정되고 유가가 하향 안정될 경우 물가 부담은 완화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 경우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 종료 기대가 커지면서 달러 약세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AI 투자에서 시작된 신용 우려도 최근 외환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상승하고 관련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서 미국 기술기업의 대규모 AI 투자가 부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AI 관련 주식 조정과 달러 흐름도 일정 부분 맞물렸다. 2025년 이후 하이퍼스케일러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조정받았던 구간에서 달러가 약세를 보이거나 기존 강세가 둔화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미국 기술주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경우 달러 자산 선호도 함께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 신용 우려가 커지는 것 자체는 단기적으로 안전자산 수요를 자극할 수 있지만,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는 반대로 달러 약세 요인이 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보고서는 현재 AI 신용 우려가 금융시장 전반의 신용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 AI 투자 우려를 촉발한 코어위브의 CDS가 이전 고점을 밑돌고 있고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의 이익 흐름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규모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3분기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기비 연율 20.9%로 팬데믹 직후인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3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이다.
한국 역시 3분기 설비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 사이클이 이어지는 만큼 AI 신용 우려를 곧바로 투자 사이클 붕괴로 연결하기 어렵다는 게 보고서의 판단이다.
하이퍼스케일러의 현금흐름 악화도 투자 확대의 결과로 분석됐다. 이들 기업의 합산 자본적지출(CAPEX)은 2025년 5371억달러에서 올해 1조1088억달러로 급증하면서 잉여현금흐름은 858억달러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순부채를 EBITDA로 나눈 비율은 올해 0.14배로 예상됐다. 2027년에는 0.12배, 2028년에는 0.03배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돼 부채상환 능력 자체는 양호하다는 평가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재정문제가 달러의 또 다른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금리 격차가 과거 유럽 재정위기 당시 수준에 근접하면서 유로화에 하락 압력이 커졌다.
그러나 프랑스 문제가 제2의 유럽 재정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평가됐다. 과거 재정위기를 겪었던 남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프랑스의 경제 펀더멘털과 부채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상황 악화 시 유럽중앙은행(ECB)이 대응할 여력도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유럽 회사채 신용스프레드와 금융업종 주가는 과거 주요 위기 당시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iM증권은 11월 말 프랑스의 2027년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재정 불안도 다소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AI 신용 우려와 프랑스 재정불안, 이란 리스크가 동시에 불거졌지만 시장 전반의 안전자산 선호는 아직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신용스프레드 상승폭이 크지 않고 대표적 안전통화인 엔화의 강세도 강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들 위험이 완화되면 달러에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달러화지수의 4분기 전망치가 99.0으로 제시된 배경이다.
원화는 글로벌 달러 흐름 외에도 국내 요인이 뒷받침하고 있다. 가장 큰 축은 수출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중심으로 수출 경기가 강한 흐름을 보이면서 무역수지 흑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늘면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증가해 원·달러 환율에는 하락 요인이 된다.
재정건전성도 원화 차별화 요인으로 제시됐다. iM증권은 글로벌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의 재정수지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도 원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주환원 확대도 외환시장에서는 주목할 변수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에 활용하기 위해 원화로 바꾸는 물량이 증가할 경우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원화 약세 요인이지만 순매도 규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출과 무역흑자, 기업들의 환전 물량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달러 수요를 일부 상쇄하는 구조다.
결국 4분기 달러 방향은 중간선거 결과 하나보다 그 이후 불확실성이 어떤 경로로 풀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AI 신용 우려가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고 프랑스 재정 리스크가 진정되는 가운데 이란 관련 긴장 완화로 유가까지 안정될 경우 달러 강세를 지탱해온 안전자산 수요도 약해질 수 있다.
박 연구원은 강한 수출 경기와 무역수지 흑자, 상대적으로 양호한 재정건전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주환원에 따른 환전 수요를 원화 강세 요인으로 제시했다. 다만 이란 관련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해 국제유가가 추가 급등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다시 상승할 가능성도 변수로 남아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