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원, 국내 판매차량 47종 조사…36종 측면 접합유리 적용 가능
비상탈출 망치 4종 모두 접합유리 파괴 실패…소비자 76.5%는 적용 사실 몰라
[더파워 이우영 기자] 자동차 침수나 전복 사고 등으로 차량 문이 열리지 않을 때 비상탈출용 망치로 창문을 깨고 탈출하는 방법이 일부 차량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소음 차단을 위해 적용이 늘어난 접합유리는 일반 강화유리보다 충격에 강해 비상탈출용 망치로도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판매차량 47종 가운데 36종은 앞좌석 측면 창유리에 접합유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은 4일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자동차 창유리 적용 현황과 비상탈출 관련 안전성을 조사한 결과, 접합유리가 장착된 차량은 비상 상황에서 창문을 깨고 탈출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비자 상당수가 접합유리의 특성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제조사의 관련 안전정보 제공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창유리는 크게 강화유리와 접합유리로 구분된다. 강화유리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작은 조각으로 깨지는 특성이 있으며, 접합유리는 두 장의 유리 사이에 고분자 필름을 삽입해 고온·고압으로 압착한 구조다. 접합유리는 외부 소음 차단과 충격 저항 성능이 높지만 사고로 차량 문이 열리지 않을 때 창유리를 통한 탈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과 실시한 시험에서 두 유리의 파손 특성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무게 2.26㎏의 쇠구슬을 떨어뜨리는 시험에서 강화유리는 5m 높이에서 파손되면서 쇠구슬이 관통했다. 반면 접합유리는 같은 높이에서 금이 가는 등 파손이 발생했지만 쇠구슬이 관통하지 않았으며, 10m 높이에서야 파손과 관통이 동시에 나타났다.
비상탈출용 망치를 이용한 시험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 소비자원이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망치형, 단일 센터펀치형, 이중 센터펀치형, 카드형 등 4종의 비상탈출 도구를 시험한 결과, 모든 제품이 강화유리는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접합유리는 네 가지 도구 모두 파괴하지 못했다. 충격을 가한 부위에 금이 생겼지만 유리와 필름으로 이뤄진 구조가 유지돼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소비자원은 차량 머리받침대의 철제 막대나 비상탈출용 망치를 사용하더라도 접합유리는 파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제조사별 접합유리 적용 현황도 조사했다. 지난 7월 8일 기준 현대자동차와 기아, 제네시스,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 쉐보레 등 국내 완성차 6개 브랜드가 판매하는 47개 차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영업용과 특장차, 화물차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사 결과 전체 47개 차종 가운데 36종인 76.6%가 1열 측면 창유리에 접합유리를 기본 또는 선택 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1열과 2열 측면 창유리 모두 접합유리를 적용할 수 있는 차종도 25종으로 53.2%에 달했다.
특히 12개 차종은 1열과 2열 측면 창유리에 접합유리가 기본 사양으로 적용돼 소비자가 다른 종류의 유리를 선택할 수 없었다. 조사 대상 차량 4종 가운데 1종꼴로 앞좌석과 뒷좌석 측면 창문 모두 접합유리가 기본 적용된 셈이다.
후면유리까지 접합유리를 장착한 차량도 확인됐다. 기아 K9과 제네시스 G90은 앞좌석과 뒷좌석 측면 창유리뿐 아니라 후면유리까지 접합유리를 기본 사양으로 적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면유리를 포함해 차량 내부를 둘러싼 모든 창유리가 접합유리인 구조다.
이들 차량은 측면과 후면 창유리를 비상탈출용 망치로 깨는 방식의 탈출이 특히 어려울 수 있다. 소비자원은 차량의 창유리 종류와 장착 위치에 따라 비상탈출 방법이 달라질 수 있어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에 적용된 유리의 특성을 사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사의 정보 제공 방식에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제조사들은 접합유리를 '이중접합 차음유리' 등으로 소개하면서 외부 소음 감소와 정숙성 등을 주요 장점으로 강조했다. 반면 강화유리보다 파괴하기 어렵다는 특성이나 비상탈출 시 유의사항에 관한 안내는 충분하지 않았다.
접합유리가 실제 어느 창문에 적용되는지도 소비자가 쉽게 확인하기 어려웠다. 차종별 사양 등급이나 선택품목에 따라 적용 위치가 달라지지만 관련 정보는 주로 차량 카탈로그나 가격표의 세부 항목에 기재돼 있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낮았다. 소비자원이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동차 측면 창유리에 접합유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응답이 76.5%에 달했다. 이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23.5%에 그쳤다.
비상탈출에 필요한 정보로는 '자동차 비상탈출 방법 안내'를 꼽은 응답자가 73.2%로 가장 많았다. 이어 비상탈출 도구 사용법 안내가 65.3%, 측면 창유리의 강화유리·접합유리 정보 제공이 58.9%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복수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선이 필요한 사항으로는 차량 구매 시 비상탈출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이 74.8%로 가장 높았다. 자동차 측면 창유리의 종류와 적용 위치를 명확히 알려야 한다는 응답은 55.2%, 측면 창유리 중 최소 한 곳에 강화유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33.1%였다. 소비자의 창유리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19.4%를 차지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완성차 제조사에 자동차 창유리의 안전정보 표시 개선을 권고했다. 측면 접합유리를 선택품목으로 운영해 소비자 선택권을 강화하고, 차량 출고 시 비상탈출용 망치를 함께 제공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제조사들의 개선 움직임도 확인됐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관련 제조사 5곳 모두 창유리 안전정보 표시를 개선하겠다고 회신했다. KG모빌리티와 르노코리아, 한국지엠 등 3개사는 측면 창유리의 선택품목 운영 등 소비자 선택권 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KG모빌리티는 비상탈출용 망치를 차량 출고 지급품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소비자원은 관계부처에도 접합유리의 특성을 반영한 자동차 비상탈출 지침 마련을 건의했다. 기존 강화유리 중심의 탈출 방법과 달리 접합유리는 일반적인 비상탈출 도구로 파괴하기 어려운 만큼 차량별 창유리 구조를 고려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운전자에게는 자신의 차량에 장착된 창유리의 종류와 위치를 사전에 확인하도록 당부했다. 강화유리는 창문에 표시된 'TEMPERED', 접합유리는 'LAMINATED' 등의 문구를 통해 구별할 수 있다. 창유리의 특성에 맞는 비상탈출 도구를 차량 내부에 비치하고 사용 방법을 숙지하는 것도 권고했다.
비상 상황에서 강화유리를 깨야 할 때는 유리 중앙보다 모서리 부분을 가격하는 방법이 안내됐다. 다만 접합유리는 같은 방식으로도 파괴가 어려울 수 있어 차량별 탈출 경로와 방법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은 자동차 침수와 전도, 다중 추돌 등 긴급 상황에서 탑승자의 탈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조사의 안전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차량 창유리의 특성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관련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우영 더파워 기자 leewy1986@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