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 등 재판 넘겨…직접 담합 규모 14.2조원 판단
[더파워 이우영 기자] 미국과 이란 전쟁 직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담합해 유가를 끌어올린 혐의로 국내 정유 4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를 14조2000억원으로 보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가격 추종 효과까지 포함하면 약 26조원 규모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6일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 4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과 책임매니저, 법무실장,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은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미국·이란 전쟁 직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이례적으로 급등한 배경에 정유사 간 가격 담합이 있었다고 봤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결정부서 책임자들은 전쟁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합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두 회사가 SK에너지 가격을 HD현대오일뱅크보다 리터당 30~40원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올리기로 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전쟁 발발 당시 정유사들이 상당량의 원유를 이미 비축하고 있어 가격이 급등할 불가피한 사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규모로 입금가를 올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담합이 국내 유가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을 촉발했다고 봤다. 국내 정유시장이 두 회사의 가격을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참고하거나 추종하는 구조였다는 판단이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 가격결정부서 직원들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 급등을 따라 가격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를 경쟁질서를 교란하는 의식적 병행행위로 봤지만,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아 가격 추종 행위 자체는 기소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정유사 직원들의 대화방 내용도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가격 상승 과정에서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전쟁 직후의 가격 담합이 단순한 일회성 일탈이 아니라 기존의 가격 정보 교환 관행이 국제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판단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2024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가격 정책 결정을 위해 가격 정보를 교환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정유사들의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도 문제 삼았다. 4대 정유사가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유소가 해당 정유사 제품만 구매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공급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하고, 주유소들이 더 저렴한 유통 경로를 통해 석유제품을 공급받지 못하게 했다고 봤다. 이를 위반한 주유소에는 손해배상 청구, 비용 회수, 보너스카드 중단 등 불이익이 따르는 계약 구조가 유지됐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4대 정유사를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대응 과정에서 증거 인멸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공정위 현장조사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내부 자료를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에 나선 것으로 보고 관련 직원들을 조사방해 혐의로도 재판에 넘겼다.
또 정유회사 3곳이 산업통상부에 석유제품 공급가를 실제 인상액보다 낮춰 허위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향후 산업통상부와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협력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적 혼란을 틈타 유가를 교란한 중대 범죄”라며 “담합행위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유가를 교란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우영 더파워 기자 leewy1986@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