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권 보장 vs 소상공인 생존 부담… 준비되지 않은 제도는 또 다른 갈등을 낳는다
이미지 확대보기이스란 보건복지부 제1차관(오른쪽)이 지난 13일 서울 한 매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장벽없는 무인정보단말기(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작동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사진=보건복지부
[더파워 부·울·경 취재본부 이승렬 기자] “이거 또 바꿔야 합니까?”
부산의 한 음식점 점주는 계산대 옆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몇 해 전 인건비 부담을 줄이겠다며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키오스크를 설치했지만, 이제는 ‘장벽없는 무인정보단말기’로 교체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가격은 기존 제품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지난달 28일부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가 본격 시행됐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은 음성안내, 화면 확대, 색상 대비, 휠체어 접근성 등을 갖춘 기기를 설치해야 한다. 취지는 분명하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시간이 곧 차별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현장 홍보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함께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대전·대구·광주·인천 등 전국 권역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제1차관 역시 지난 13일 서울의 한 매장을 찾아 장애 당사자와 함께 주문 과정을 점검했다. 현장에서 반복된 질문은 Q&A 자료집으로 정리해 배포할 계획이다. 제도 안착을 위한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여전히 무겁다. 정책은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소상공인에게는 매달 임대료와 인건비, 카드 수수료가 현실이다.
부산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A씨는 “인건비를 줄여보려고 큰돈 들여 키오스크를 들였는데, 장애인 배려를 위해 또 두 배 넘는 고가 제품으로 바꾸라니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소수를 위한 정책 때문에 다수가 감당해야 하는 구조 아니냐”며 “차라리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 전용 식당이 더 현실적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거친 어조였지만, 생존을 둘러싼 현실의 목소리였다.
정부는 배리어프리 기기 구입비를 최대 700만 원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청과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해 실제 지원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당장 교체를 고민하는 점주에게는 그 시간 자체가 부담이다.
집행의 혼선도 변수다. 부산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미설치에 대한 민원 등 단속 근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있으며, 구체적인 단속 지침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점검과 과태료 부과를 어떤 기준으로, 언제부터 적용할지에 대한 세부 가이드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제도는 전국적으로 시행됐지만, 현장 집행의 기준과 속도는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장애인 단체는 접근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부산의 등록 장애인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다. 키오스크 앞에서의 좌절을 일상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외면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균형이다. 접근권은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이고, 소상공인의 생존권 또한 현실이다. 비용을 어떻게 나누고, 속도를 어떻게 조정하며, 현장의 혼선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키오스크 화면은 밝게 빛나지만, 그 앞에 선 사람들의 표정은 아직 복잡하다. 방향은 옳을 수 있다. 다만 그 길을 어떻게 함께 걸어갈지는 이제 정책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