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국가와 첫 자유무역협정…상품 자유화율 수입액 기준 96% 달성
[더파워 한승호 기자] 한국과 세르비아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기업의 서부발칸 시장 진출 기반이 넓어지게 됐다. 반도체와 전기차, 자동차부품 등 주력 수출품의 세르비아 시장 접근성이 개선되고, 핵심광물과 인공지능, 바이오 등 미래산업 협력 채널도 마련된다.
산업통상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야고다 라자레비치 세르비아 대내외무역부 장관과 한·세르비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하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자유무역협정의 한 형태로, 상품 관세 인하 등 무역 자유화뿐 아니라 공급망과 산업협력 등 다양한 경제협력 분야를 함께 다룬다.
한국이 발칸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르비아는 자동차와 기계 등 제조업 기반을 갖춘 서부발칸 지역의 핵심 경제국으로 꼽힌다. EU와 가까운 지리적 위치,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력 기반,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도 투자 협력 측면에서 주목받는 요소다.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품목 수 기준 90.2%, 수입액 기준 96% 이상의 관세 철폐에 합의했다. 산업부는 최종 상품 자유화율이 양국 모두 수입액 기준 96% 수준으로, 2024년 발효된 중국·세르비아 FTA의 수입액 기준 자유화율 95%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세르비아는 세계무역기구 정보기술협정 미가입국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반도체와 전기전자 제품에 최대 25%의 관세가 부과됐지만, 이번 CEPA 타결로 관련 관세가 철폐될 예정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시장 개방 폭이 확대된다. 세르비아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 시장을 개방하고, 자동차부품 전 품목에 대한 관세도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지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검토하는 국내 자동차부품 기업의 영업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K-푸드와 K-뷰티 제품도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된다. 라면, 조미김, 인삼, 커피믹스 등 식품류와 색조화장품, 스킨케어 제품의 대세르비아 수출 관세가 낮아지거나 사라질 예정이다. 의료기기, 의약품, 방산 품목에 대한 시장 접근도 확보했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핵심광물 협력이 포함됐다. 세르비아산 리튬, 코발트, 니켈, 흑연, 희토류 등에 대한 관세는 즉시 또는 5년 안에 철폐된다. 산업부는 이 같은 조치가 이차전지와 반도체 등 국내 첨단산업의 핵심 원자재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축산물 분야에서는 민감 품목 개방을 최소화했다. 세르비아의 대한국 수출 비중이 큰 사료용·가공용 옥수수에 대해서는 각각 즉시 철폐와 10년 철폐 방식으로 양허했다. 반면 쌀, 천연꿀, 딸기·베리류 등 과일, 육류, 유제품 등 국내 민감 농축산물은 시장 개방 폭을 제한했다.
원산지 규범은 공급망 다변화 흐름을 반영했다.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전자·전기기기, 기계류, 가공식품 등 주요 품목에는 역외산 재료를 폭넓게 허용하는 기준이 도입된다. 다만 신선 농수산물에는 완전생산기준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조미김과 인삼 음료에는 주요 재료의 역내산 사용 요건을 두기로 했다.
통관 절차도 빨라질 전망이다. 양측은 일반 수입물품은 도착 후 48시간 이내, 특송물품은 6시간 이내 반출을 원칙으로 하는 신속통관 규범을 도입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물류비용 절감과 통관 예측 가능성 확보 효과가 기대된다.
온라인 지식재산권 보호 규범도 포함됐다. 저작권 침해 웹사이트 차단, 반복 침해 방지조치 등 온라인 환경에서의 침해 대응 수단을 마련해 우리 콘텐츠와 브랜드의 보호 수준을 높이기로 했다.
기술규제와 검역 분야에서도 양자 협력 기준을 정비했다. 세르비아가 WTO 미가입국임에도 WTO 무역기술장벽 협정과 위생·식물위생 협정을 양자관계의 준거규범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기술규제 제·개정 시 사전 통보와 규제 시행 전 6개월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투명성 규범도 도입된다.
경제협력 범위는 공급망과 에너지, 광물, AI, 보건의료, 생명공학기술 등으로 넓어졌다. 산업·제조, 교통·물류, 중소기업, 관광 분야 협력도 추진된다. 리튬과 구리, 아연 등 광물자원을 보유한 세르비아와 협력 채널을 구축해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양국의 현재 교역 규모는 아직 크지 않다. 산업부에 따르면 2026년 3월 기준 양국 무역 규모는 7400만달러로, 한국의 수출은 4500만달러, 수입은 2900만달러였다. 한국은 세르비아에 평판디스플레이, 집적회로반도체, 인쇄회로 등 공산품을 주로 수출하고, 세르비아에서는 기타금속광물 등 1차 산품을 주로 들여오고 있다.
투자 측면에서는 한국 기업의 세르비아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 누계 기준 한국의 대세르비아 투자는 23건, 4960만달러다. 유라코퍼레이션, 한국타이어, 경신전선 등이 현지에 진출해 있으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판매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협상은 2023년 한·세르비아 총리회담을 계기로 추진됐다. 양국은 2024년 9월 협상 개시 이후 1차 공식협상과 여러 차례 회기간 협상을 거쳐 총 12개 챕터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한·세르비아 CEPA 타결은 서부발칸 지역 핵심 파트너인 세르비아와의 경제협력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장개방뿐 아니라 공급망, 에너지·광물, AI·바이오 등 미래산업 분야 경제협력 플랫폼을 함께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식 서명을 위해 법률 검토와 협정문 국문 번역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한다. 정식 서명 이후에는 경제적 영향평가와 국회 비준동의 등 발효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hansh1975@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