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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난제 RAS 뚫리나…제약·바이오 투자 지형 바뀐다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6-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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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CO 2026서 췌장암 생존기간 개선 데이터 공개…ADC·정밀진단까지 항암제 판도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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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제약·바이오 투자 지형이 다시 항암제로 향하고 있다. 단순히 신약 후보물질 하나가 임상에서 성공했다는 차원을 넘어, 오랜 기간 공략이 어려웠던 표적이 열리고 치료제 개발 방식 자체가 바뀌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RAS가 있다. RAS는 암세포 성장과 분열에 깊이 관여하는 대표적인 유전자 변이지만, 약 40년간 ‘약으로 잡기 어려운 표적’으로 불려왔다. 단백질 구조상 약물이 결합할 공간이 제한적이고, 변이 유형도 다양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올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ASCO 2026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pan-RAS 억제제 다락손라십이 췌장암 임상 3상에서 기존 표준치료 대비 전체생존기간을 크게 늘린 결과가 공개되면서다. 췌장암은 대표적인 난치암으로 꼽힌다. 표적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고, 전이성 단계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 성과 개선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컸다.

15일 DS투자증권에 따르면 다락손라십은 췌장암 2차 치료 환자 대상 임상에서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을 기존 표준치료 6.7개월에서 13.2개월로 늘렸다. 위험비는 0.40으로 제시됐다. 약물 중단율도 기존 화학항암제보다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 안전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로 평가됐다.

이번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췌장암 치료제 하나가 추가될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공략이 어려웠던 RAS 변이를 실제 임상에서 제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항암제 개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RAS 변이는 췌장암뿐 아니라 대장암, 비소세포폐암 등 주요 암종에서 폭넓게 발견된다. 특히 췌장암의 경우 RAS 변이 비율이 매우 높고, 대장암과 폐암 역시 환자 수가 큰 시장이다. 다락손라십이 췌장암을 시작으로 폐암, 대장암으로 개발 영역을 넓힐 경우 RAS 억제제는 향후 항암제 시장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 관점에서 중요한 대목은 병용요법이다. RAS 신호전달 경로는 하나의 표적만 막는다고 완전히 차단되기 어렵다. 암세포는 우회 경로나 보상성 신호를 통해 다시 성장 신호를 활성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향후 RAS 치료제 개발은 다락손라십을 기반으로 하되, RAS-MAPK 경로를 추가로 억제하는 약물과 병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PRMT5 억제제와의 병용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RAS 변이와 MTAP 결손을 동시에 가진 환자군에서 병용요법의 높은 반응률이 공개되면서, RAS 억제제 시장은 단독요법을 넘어 바이오마커 기반 병용요법 경쟁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앞으로는 어떤 환자에게 어떤 변이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에 맞춰 치료 조합을 설계하는 방식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은 정밀진단 시장의 확대와도 맞물린다. 지금까지 췌장암은 사용할 수 있는 표적치료제가 제한적이어서 유전자 검사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RAS 억제제가 실제 치료 옵션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RAS 변이뿐 아니라 MTAP 결손 등 병용요법에 필요한 바이오마커까지 함께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소세포폐암에서도 정밀진단 수요는 이미 확대되고 있다. EGFR, ALK, RET 등 유전자 변이 치료제가 전이성 암을 넘어 조기암 영역으로 넓어지면서 포괄 유전자 검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항암제 개발이 고도화될수록 치료제와 진단기술은 따로 움직이기 어렵다. 신약이 나오면 검사가 늘고, 검사가 늘면 다시 맞춤형 치료제 시장이 커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ASCO 2026에서 확인된 또 다른 변화는 1차 치료제 시장의 경쟁 심화다. 기존 항암제 시장에서는 면역항암제와 화학항암제 조합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ADC, 이중항체, 세포치료제, 사이토카인 계열 후보물질이 1차 치료제 시장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비소세포폐암에서는 TROP2 ADC가 다시 주목받았다. 최근 일부 TROP2 ADC 개발 지연과 임상 중단으로 시장 기대가 낮아졌지만, Merck와 Kelun의 sac-TMT가 키트루다 병용요법에서 우수한 데이터를 내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같은 표적이라도 ADC 설계와 페이로드, 링커 기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이 대목은 국내 기업에도 의미가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JNJ와 TROP2 ADC 후보물질 LCB84를 개발하고 있다. DS투자증권은 동일 표적 경쟁 약물의 실패가 곧바로 같은 계열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ADC 설계 차이에 따라 개별 후보물질의 성공 가능성을 별도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혈액암 영역에서도 경쟁 구도는 바뀌고 있다. DLBCL에서는 기존 1차 치료제의 한계를 보완할 CD19 기반 치료전략과 신규 이중항체 후보들이 부상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가 개발 중인 ROR1 ADC LCB71도 이 시장에서 주목받는 후보로 거론된다. 초기 임상에서 높은 반응률을 보인 만큼, 향후 반응 지속기간과 무진행생존기간, 전체생존율 데이터가 추가로 확인될 경우 가치 재평가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다발성골수종에서는 이중항체와 ADC, CAR-T 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BCMA 이중항체 Teclistamab은 강력한 임상 데이터를 공개하며 기존 치료제와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면 BCMA ADC는 안구독성 문제가 변수로 남아 있다. 안구독성을 줄인 차세대 BCMA ADC가 등장할 경우 2차 치료제 시장에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ASCO 2026 이후 항암제 시장의 키워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RAS처럼 오랜 기간 닫혀 있던 표적의 개방이다. 둘째는 ADC와 이중항체 등 새로운 모달리티의 1차 치료제 진입이다. 셋째는 치료제 선택을 뒷받침하는 정밀진단의 확대다.

이 세 가지 변화는 제약·바이오 투자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단일 후보물질의 임상 성공 여부가 기업가치를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특정 표적을 둘러싼 플랫폼 확장성, 병용요법 전략, 동반진단 생태계까지 함께 봐야 한다. 치료제 하나의 성공이 진단, 병용약물, 후속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만 기대감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변수도 적지 않다. RAS 억제제는 아직 적응증 확대와 장기 생존 데이터 확인이 필요하다. ADC 역시 같은 표적이라도 후보물질별 결과 차이가 크고, 안전성 이슈가 상업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밀진단 시장도 규제와 보험 적용, 실제 의료현장 침투율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ASCO 2026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항암제 시장은 다시 한 번 표준치료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 40년간 난제로 불렸던 RAS 표적이 열리기 시작했고, ADC와 이중항체, 정밀진단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종의 투자 지형도 그 변화의 속도에 맞춰 다시 그려지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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