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ODA 요구액 6조3084억원…2026년 확정액보다 16% 증가
사업 수는 30.4% 감소·신규사업 비중 2.8%…기존 약정사업 중심 재편
보건·저소득국 비중은 확대…주요 공여국 감축과 다른 흐름
산업연 “개발금융·제안형 ODA·공여국 철수 공백 선점 필요”
[더파워 이경호 기자]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ODA를 대폭 줄이는 가운데 한국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체 재원은 다시 늘리되 사업 수를 줄이고 규모를 키우면서 개발금융과 산업 연계, 제안형 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ODA 구조를 바꾸고 있다.
15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2027년 ODA 요구액은 6조3084억원으로 2026년 확정액보다 16% 증가했다. 전 세계 주요 공여국이 ODA 축소에 들어간 상황에서 한국은 재원 규모를 다시 확대하는 셈이다.
2025년에도 한국의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OECD 잠정치 기준 한국의 ODA는 38억8000만달러로 전년보다 2.3% 감소했다. DAC 전체가 23.1%, 미국이 56.9%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다만 ‘돈을 다시 늘린다’는 것만으로 한국 ODA의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2027년 요구액이 늘었는데도 전체 사업 수는 오히려 30.4% 감소했다. 여러 소규모 사업을 나눠 추진하기보다 사업을 묶고 규모를 키우는 대형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신규사업도 크게 줄었다. 전체 요구액 가운데 신규사업 비중은 2.8%에 불과하다. 산업연구원은 재원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이미 약정된 사업에 투입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분야별 배분도 달라졌다. 교통 분야 비중은 28.2%에서 21.9%로 낮아진 반면 보건 분야는 10.8%까지 상승했다. 저소득국에 대한 지원 비중도 5.2%포인트 높아졌다. 세계 주요 공여국들이 최빈국과 취약국 지원을 줄이는 상황과는 다른 흐름이다.
한국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개발금융이다. 세계 ODA 시장에서는 무상지원이 줄고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활용 수준이 낮다.
2025년 기준 한국의 민간지원수단(PSI) 실적은 700만달러에 그쳤다. 일본은 10억1900만달러, 영국은 7억4900만달러, 독일은 6억7400만달러였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사실상 활용하지 않는 수준에 가깝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평가다.
정부도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한국형 개발금융을 제도적으로 안착시키고 민간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개발금융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연구원은 통계와 보고 체계를 정비하고 정부와 민간 사이의 위험분담 구조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국제 ODA 규범과의 정합성까지 초기 설계 단계부터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축은 ‘제안형 ODA’다. 협력국이 먼저 사업을 요청하면 한국이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협력국의 발전 수요와 한국의 산업역량을 함께 고려해 사업을 먼저 설계하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를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정부기관과 기업 등이 보유한 산업 정보와 기업 데이터를 ODA 사업 발굴 단계에 연결하고, 이를 협력국의 산업정책과 투자계획에 맞추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사업을 제안한 뒤에는 무상원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금융과 민간투자 등 여러 금융수단을 결합해 실제 사업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과 독일 등 주요 공여국의 ODA 감축 자체도 한국에는 새로운 변수다. 이들 국가가 지원을 줄이면서 보건과 인도적 지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최빈국 등에서는 공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2027년 계획은 이들과 다른 흐름을 보인다. 보건 분야 비중과 저소득국 지원 비중을 동시에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이를 단순한 예산 확대보다 주요 공여국이 빠져나간 협력 분야에서 한국이 장기적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로 봤다. 국내 난민비용을 포함하지 않고 실제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집행되는 사업 중심이라는 한국 ODA의 구조 역시 신뢰 확보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로 제시했다.
다만 ‘빈자리’를 잡는다는 의미를 단기적인 기업 수주나 경제적 이익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됐다. 중견 공여국으로서 취약국 지원을 이어가면서 장기적으로 산업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 개발협력은 이미 ‘원조를 많이 하는 국가’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국은 개발금융, 독일은 자국기업과 공급망, 일본은 제안형 사업과 안보협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국 역시 6조원대 ODA 예산을 단순히 분산 집행하는 방식보다 사업을 대형화하고 개발금융과 산업협력, 제안형 사업을 연결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 ODA가 줄어드는 시기에 한국이 돈을 더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재원을 어떤 시장과 국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