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분쟁조정위, 배터리 제조사 정보 누락·은폐 책임 인정…총 5억6800만원 규모
EQE·EQS 5개 차종 대상…당사자 수락해야 효력 발생, 미참여 피해자 보상도 추진
[더파워 이설아 기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은 데 대해 소비자 1인당 400만원을 배상하라는 집단분쟁조정 결정이 내려졌다.
CATL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고 차량을 구매했지만 실제로는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사실이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조정 대상은 소비자 142명으로, 결정대로 배상이 이뤄질 경우 총액은 5억6800만원에 달한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4일 벤츠코리아가 일부 전기차 모델에 중국 파라시스(Farasis) 배터리 셀을 탑재하고도 이를 누락·은폐한 행위와 관련해 신청인 142명에게 각각 400만원을 현금으로 배상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분쟁은 벤츠코리아가 공식 수입·판매한 EQE와 EQS 전기차의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둘러싸고 시작됐다. 소비자들은 CATL 배터리 셀이 탑재된 것으로 알고 차량을 구매했으나 실제 장착된 제품이 파라시스 배터리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조정 대상은 EQE 500 4MATIC SUV, EQE 53 4MATIC+, EQE 350+, EQE 350 4MATIC, EQS 350 등 5개 차종이다. 해당 소비자들은 2023년 6월부터 2024년 7월 사이 차량을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 53명은 지난 5월 11일 벤츠코리아를 상대로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위원회는 7월 2일 조정절차를 개시하고 한 달간 추가 참가자를 모집했으며, 89명이 추가로 참여하면서 최종 신청인은 142명으로 늘었다. 위원회는 9월 2일 이들에 대한 집단분쟁조정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벤츠코리아가 딜러사에 배포한 차량 판매지침에 주목했다. 벤츠코리아는 2023년 6월 내부 시스템에 'EQ Sales Playbook'이라는 판매지침을 게시하고 딜러사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진행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해당 판매지침에는 일부 모델에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돼 있는데도 CATL 배터리만 장착되는 것처럼 기재돼 있었다. 벤츠코리아는 이 자료를 딜러사에 제공했을 뿐 아니라 영업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았고, 이를 신뢰해 차량을 구매하면서 합리적인 선택 기회를 침해당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차량 판매지침은 딜러사 영업의 기준이 되는 핵심 자료인 만큼 벤츠코리아에 정확한 정보를 작성하고 안내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봤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벤츠코리아의 배터리 정보 제공 행위를 문제 삼았다. 공정위는 지난 3월 10일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사실을 누락·은폐한 행위가 '위계에 의한 부당한 고객유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112억39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대한 검찰 고발도 결정했으며, 관련 사건을 5월 6일 최종 의결했다.
이번 집단분쟁조정에서는 배터리 제조사 정보가 전기차의 구매 선택과 차량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주요 판단 근거가 됐다. 위원회는 배터리가 차량의 구동 성능과 안전성에 관련된 핵심 부품이며, 제조사에 따라 시장점유율과 인지도, 기술력 등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지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도 배상액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고려됐다. 위원회는 화재 이후 파라시스 배터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해당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교환가치가 저하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수입차는 공식 수입·판매사가 제공하는 상품정보에 소비자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도 배상 결정에 반영했다. 위원회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신청인별 배상액을 400만원으로 정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벤츠코리아의 배상 의무가 즉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분쟁조정 당사자는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수락 여부를 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양측이 조정안을 수락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위원회는 벤츠코리아가 조정결정을 수락할 경우 이번 절차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 소비자들에게도 동일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사업자에게 피해 소비자에 대한 보상계획서 제출을 권고할 수 있다.
한용호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정결정이 피해 차주들의 실질적인 권익 구제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소비자의 독일 수입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벤츠코리아가 분쟁해결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설아 더파워 기자 seol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