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김동관부회장이MADEX(국제해양방위산업전)한화오션부스를둘러보며설명을듣고있다.
지정학 리스크를 기회로... 한화, 글로벌 산업 지형 흔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불안,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세계 안보 환경이 격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은 국방비를 확대하고 군비 재편에 나서고 있으며, 방산 산업은 더 이상 윤리 논쟁의 대상이 아닌 지속가능성과 안보의 핵심 산업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보도를 통해 "글로벌 시장이 새로운 냉전의 '가열된 단계(hot phase)'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방산주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 급증을 지적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화그룹은 조선과 방산 양 축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유럽, 중동, 아시아 등 전략 요충지를 중심으로 현지화에 기반한 거점 투자를 단행하며, 단순 수출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내수시장까지 포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올해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총 3.6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후 금융당국의 조정으로 최종 2.3조 원 규모로 축소됐다. 이 중 약 1.2조 원은 조선·방산 생산기지 확충 등 시설 투자에 배정됐다.
투자 자금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비롯한 전략 요충지에 투입되며, 조선·방산 생산기지 확충, 기술력 확보, 글로벌 수주 기반 마련에 사용된다. 이는 단기 실적보다 중장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우선시한 과감한 결단으로, 기술력 확보, 무인기 개발, 스마트팩토리 인프라 구축, 전략적 JV 투자 등과 함께 글로벌 방산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목표로 한다.
한화가 인수한 미국 필리 조선소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만여 명이 근무하던 미 해군 조선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연간 1척 수준의 인도량에 머무르지만, 한화는 이를 10척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기반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도크 재가동, 블록공장 신설, 안벽 확장 등을 통해 하드웨어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업 베테랑 50여 명을 파견해 공정 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나서고 있다.
필리 조선소는 현재 미국 해사청(MARAD)의 NSMV 3척, 민간 선주사인 Matson과 GLDD의 발주로 총 7척의 수주잔고를 확보하고 있다. 모두 인수 이전 계약된 물량이지만, 2027년까지 일감이 확보돼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앞으로 미국 전략상업선단(RRF), Ready Reserve Force 등 수주 확대가 기대된다.
미국은 'Ships for America Act'를 통해 10년 내 250척의 전략상업선단 확보를 추진 중이다. 필리 조선소는 기존의 NSMV 건조 경험을 토대로 RO-RO선, 탱커, 컨테이너선 등 다양한 선형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는 방산 분야에서도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완전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 Radford 장약공장 현대화 사업을 수주해 진행 중이며, 향후 자주포, 탄약 등의 현지 생산도 고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외국산 무기에 가격 페널티를 부과하거나 수입 자체를 제한하고 있어, 현지 생산 없이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따라 한화는 미국 내 법인을 통해 미국산 기업으로 간주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를 총괄하는 Hanwha Global Defense의 CEO 마이클 콜터는 미국 국방부, 국무부, 상원 등에서 주요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이는 한화의 전략적 접근 방식을 상징하며, BAE Systems의 미국 내 안착 전략과 유사하다.
한화는 폴란드 WB Electronics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K239 천무의 CGR-080 유도탄을 현지 생산하고 있으며, 루마니아에는 K9 자주포 54문과 보급차량 36대를 공급하는 1.3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NATO Readiness 2030 계획과 맞물려 유럽 방산시장 내 입지 확대의 핵심 포인트다.
호주에서는 레드백 장갑차, K9 자주포를 공급 중이며, 사우디 등 중동지역에도 현지 합작법인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미국 차세대 자주포 사업에서는 K9A2가 유력한 후보로, 미국 M982 엑스칼리버 탄약과의 호환성 시험을 마쳤으며, 60km급 장거리 사격 성능 확보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4월22일오전9시48분(한국시간)미국플로리다주케이프커너베럴우주군기지에서대한민국정찰위성4호기가실린스페이스X사의팰컨-9발사체가발사되고있다.출처=스페이스X
ESG 패러다임 변화, 방산의 위상 변화로 연결
ESG 투자 기준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 방산은 대표적인 배제 산업이었으나,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의 확대와 함께 '안보 없는 지속가능성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ESG 편입 대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ESG 펀드의 방산주 편입 규모는 2022년 29억 4천만 달러에서 2024년 말 87억 1천만 달러로 3배 증가했다.
한화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민간 위성사업 유텔샛 지분 5.4%를 전량 매각하고, 군사 위성·방위 통신 중심의 자산 구조로 전환했다. AI, 자율무기체계, 디지털 트윈 등 첨단 기술 기반의 전장 역량 확보에도 적극 나서며 방산을 디지털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한화는 향후 4년간 11조 원 규모의 글로벌 투자를 집행하며, 미국에 1.3조 원, 유럽과 중동에 9천억 원을 배정했다. 이는 단발성 수출을 넘어 유지·보수, 성능개량, 부품 공급까지 포함하는 체계 수출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조선·위성통신·항공우주 등 연계 산업까지 포괄하는 '토탈 디펜스 솔루션' 전략의 핵심이 된다.
현재 회복세를 보이는 한화 주가는 이러한 전략의 정당성과 효과를 반영하고 있다. K-방산은 이제 국가 산업을 넘어, 글로벌 안보 질서를 좌우하는 새로운 플랫폼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한화가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