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투자 확대·HBM 공급 제약 영향…확장 국면 40개월째 지속
[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국은행이 최근 제기된 ‘반도체 고점론’에 선을 그었다.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가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는 반면, 고성능 제품 공급 확대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글로벌 반도체 경기의 확장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1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현재 반도체 시장에 대해 “AI 인프라 투자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한 데 비해 공급 확대 속도는 더디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번 반도체 확장기가 과거 사이클과 성격이 다르다고 봤다. 단순한 IT 기기 교체 수요나 재고 조정이 아니라 AI 확산에 따른 산업 생태계 변화와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적 투자가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고성능 반도체의 기술 난도와 주문형 제품 중심의 시장 구조가 제약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은은 “고성능 제품의 기술적 어려움으로 제품 양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고대역폭 메모리 등 주문형 제품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공급 확대 속도가 제약된다”고 평가했다.
수요는 빠르게 늘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를 근거로 “글로벌 반도체 경기는 상당 기간 확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밝혔다.
현재 반도체 경기 흐름도 과거보다 강하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데이터센터 등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호조로 반도체 경기가 과거 확장세를 훨씬 뛰어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확장 기간도 이미 과거 평균을 넘어섰다. 한은은 현재 반도체 경기 확장 국면이 2023년 3월 이후 4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다섯 차례 확장기의 평균 기간인 29개월을 웃도는 수준이다.
해외 투자은행들도 반도체 경기의 추가 확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은은 AI 기술 확산 속도와 수익성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있지만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대체로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적어도 내년까지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10일 현지시간 SK하이닉스 ADR 상장식 이후 CNBC 인터뷰에서 향후 5년 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고객들은 그 수준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반도체 수출 실적도 한은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통관 기준 반도체 수출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지난 4월 171.4%, 5월 167.7%를 기록했다. 6월에는 월간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의 이번 평가는 반도체 경기 확장이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쪽으로 전망 시계가 길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반도체 사이클이 2026년까지 좀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고점론의 핵심은 AI 투자 확대가 어느 시점에 둔화되고 공급 확대가 뒤따르며 업황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한은은 현재로서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HBM 등 고성능 제품 공급 제약이 맞물려 반도체 경기의 확장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