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아시아인의 비만을 체질량지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연구 제안이 나왔다. 체중은 정상 범위여도 복부와 간, 췌장 등에 지방이 쌓이면 당뇨병과 지방간,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임수 교수팀은 아시아인의 비만 진단 체계를 재정립하는 새 기준을 국제 학계에 제안하는 리뷰논문을 발표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비만·당뇨병 분야 연구진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임수 교수는 제1저자이자 책임저자로 참여했다.
비만은 전 세계 약 8억 명이 앓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성인 5명 중 2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에 해당할 만큼 흔한 질환으로 꼽힌다.
그동안 비만 진단은 주로 체질량지수에 의존해 왔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간단하게 체중 상태를 분류하는 데 쓰인다.
문제는 BMI만으로는 체지방이 얼마나 많은지, 지방이 어디에 쌓였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같은 BMI라도 지방의 양과 위치, 근육량, 장기 기능 상태에 따라 실제 건강 위험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한계는 아시아인에게 더 뚜렷하다. 아시아인은 BMI가 정상 범위여도 복부와 간, 췌장 등에 지방이 과도하게 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쌓인 지방은 혈당 조절을 어렵게 만들고 장기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당뇨병, 지방간, 심혈관질환 등 대사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커진다.
고령화와 함께 근감소성 비만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근육량은 줄고 지방은 많은 상태가 늘면서 체중 숫자만으로 건강 위험을 파악하기 더 어려워진 것이다.
실제로 BMI가 정상 범위인 한국 성인의 32%가 대사질환 위험을 갖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겉으로는 정상 체중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임 교수팀은 이에 따라 아시아인에게 맞는 새로운 비만 진단 기준을 제시했다. 2025년 국제 학술지 란셋 위원회가 발표한 ‘임상적 비만병’ 개념을 바탕으로 아시아인의 특성을 반영해 구체화한 것이다.
새 기준은 비만을 단순한 체중 문제가 아니라 실제 합병증 발생 여부와 장기 기능 이상을 함께 보고 판단한다. 체지방은 많지만 뚜렷한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상태는 ‘비만 전단계’로 구분한다.
반면 체지방 과다로 중요 장기의 기능 이상 등 합병증이 실제로 발생한 상태는 ‘임상적 비만병’으로 나눈다. 체중 숫자보다 건강 피해가 나타났는지를 중심에 두는 방식이다.
임상적 비만병 진단은 세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체지방이 과다한지 확인하고, 장기 기능 이상 여부를 평가한 뒤, 최종적으로 임상적 비만병 여부를 판단한다.
평가 항목에는 허리둘레, 체지방률,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신장 기능 등이 포함된다. 정밀한 체성분 측정을 위해 이중에너지 X선 흡수계측법이나 전기저항을 이용한 임피던스 기기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치료 방향도 진단 단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비만 전단계에서는 아직 합병증이 없는 만큼 식습관과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으로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임상적 비만병 단계에서는 이미 합병증이 나타난 상태다. 이 경우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나 비만대사수술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연구팀은 새 기준이 적용되면 BMI가 낮아도 질환 위험이 높은 아시아인 환자에게 조기 예방과 치료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봤다. 동시에 비만을 개인 의지나 외모 문제가 아니라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보는 인식 전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임수 교수는 “아시아인은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아도 내장지방과 간·췌장 지방이 축적돼 당뇨병과 지방간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 “비만 진료의 중심을 체중계 숫자에서 체지방의 양과 위치, 장기 기능, 환자의 실제 건강 문제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제안한 새 기준은 더 많은 사람에게 비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조기에 찾아내고 BMI만으로 비만을 정의하는 기존 방법의 과소 진단과 과잉 진단을 동시에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설아 더파워 기자 seol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