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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규제의 시대 끝나간다…미·일·유럽, 디지털자산을 ‘금융’으로 다시 짠다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8-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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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클래리티 법안으로 SEC·CFTC 관할 재설계
유럽 디지털유로·영국 디지털국채…토큰화 경쟁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
한국도 예금토큰 실증 50만개로 확대…2027년 가상자산 과세가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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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디지털자산을 둘러싼 경쟁의 무대가 바뀌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나 가상자산 거래량이 아니라 누가 디지털자산을 기존 금융시장 안에 먼저 넣고, 결제·대출·수탁·국채까지 하나의 제도로 묶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각국 정책의 초점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막는 데 가까웠다. 거래소를 감독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증권인지 상품인지 따지는 과정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자산을 실제 금융 인프라로 사용하는 단계로 정책이 옮겨가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디지털자산 정책 분석을 통해 미국과 일본, 유럽, 영국에서 발행·거래·결제 체계 정비와 토큰화 금융시장 구축이 동시에 구체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도 예금토큰 실증 범위가 결제를 넘어 송금과 국고금 집행으로 확대되면서 같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 흐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넣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무엇을 누가 감독할 것인가’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미 상원에 공개된 클래리티 법안 수정안은 기존 하원안보다 훨씬 복잡한 분류체계를 제시했다. 디지털상품과 성숙한 블록체인이라는 기준 대신 ‘네트워크 토큰’과 ‘부수자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해당 토큰이 지분이나 부채, 배당청구권, 청산권 등 전통 금융상품의 권리를 갖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토큰의 외형보다 실제 권리관계를 보겠다는 의미다. 단순한 거버넌스 권한이나 프로토콜 운영 참여만으로 전통적인 금융상품과 같은 권리를 가진 것으로 보지 않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규제기관의 역할 역시 재편된다. 디지털상품 현물시장에서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권한을 강화하고, 증권과 발행·공시 영역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맡는 구조를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에 토큰화된 증권에는 기존 증권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원칙도 포함됐다. 블록체인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금융상품의 법적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방향이다.

이는 미국 규제의 중심이 ‘가상자산을 인정할 것이냐’에서 ‘기존 금융규제를 디지털자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로 옮겨갔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SEC 내부에서도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헤스터 퍼스 SEC 위원은 온체인 볼트와 대출 서비스라도 운용 구조에 따라 기존 연방 증권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컨트랙트를 썼느냐가 아니다. 누군가 수익 전략을 선택하고 자산을 재배분하거나 금리와 담보인정비율(LTV), 청산 기준을 결정한다면 그 ‘운용 재량’ 자체가 규제 판단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자리 잡으면 탈중앙화금융(DeFi)의 규제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프로토콜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넘어 누가 실제 투자 결정을 내리고 수익 구조를 운용하는지까지 들여다보는 방향이다.

거래소의 이자형 상품이나 기관 대상 온체인 자산운용 서비스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탈중앙화라는 이름만으로 전통 금융의 투자자문·투자회사·채무증권 관련 규제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다만 미국의 제도화가 곧바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클래리티 법안은 9월 15일 상원 절차표결이 예정돼 있지만 토론종결에는 통상 60표가 필요해 공화당 단독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공직자 윤리 조항과 자금세탁방지 규정 등에 대한 추가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상원이 9월 회기를 재개하더라도 예산안 등 다른 현안이 대기하고 있어 연내 처리 가능성에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

미국이 ‘누가 감독할 것인가’를 정리하고 있다면 유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화폐를 어떻게 실제 결제에 사용할 것인가’를 시험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유로 시범사업에 참여할 민간 결제서비스제공자 36곳을 선정했다. 2027년 하반기부터 12개월 동안 개인 간 송금과 오프라인 결제, 전자상거래, 모바일 결제 등을 실제 사용 환경에 가까운 조건에서 검증할 예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중앙은행이 모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은 발행과 정산 인프라를 담당하고 은행과 비은행 결제사업자가 계정과 지갑, 고객관리, 가맹점 서비스를 맡는 구조다.

디지털유로가 민간 금융회사를 밀어내는 새로운 결제망이라기보다 기존 금융회사를 디지털 중앙은행화폐 생태계 안에 넣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는 셈이다.

관련 입법 논의까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ECB는 2029년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디지털유로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에서 CBDC가 연구 단계에서 실제 금융서비스 설계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행보는 더 공격적이다. 디지털화 대상이 화폐를 넘어 국채와 담보, 펀드, 채권, 레포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다.

영국 재무부가 내놓은 홀세일 금융시장 토큰화 로드맵에는 상용 토큰화 시장과 토큰화 담보, 펀드시장, 결제망, 수탁, 디지털 신원, 과세 등이 함께 담겼다. 단순히 금융상품 하나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금융거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구조다.

2027년 1분기에는 디지털 국채 ‘DIGIT’의 첫 발행도 추진할 계획이다. HSBC의 Orion 플랫폼을 활용해 국채를 발행하고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과 연결해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구상이다.

영국이 만든 산업 태스크포스에는 54개 회사가 참여했다. HSBC와 씨티,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은행은 물론 블랙록과 피델리티 같은 자산운용사, 코인베이스·서클·리플·크라켄 등 디지털자산 기업까지 한 테이블에 들어왔다.

의미는 분명하다. 전통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회사가 서로의 시장을 빼앗는 경쟁을 넘어 앞으로 만들어질 토큰화 금융시장의 규칙과 인프라를 함께 설계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제도화를 앞당겼다. 일본은 암호자산 관련 규제를 기존 자금결제법에서 금융상품거래법 체계로 옮기는 개정법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그렇다고 암호자산을 주식이나 채권 같은 유가증권으로 바꾼 것은 아니다. 유가증권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금융상품으로 두면서 금융상품거래법 수준의 영업행위와 공시, 고객자산 관리, 내부자거래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발행자가 있는 특정 암호자산에는 정보공개 의무도 생긴다. 거래소의 상장·상장폐지 정보를 이용한 거래까지 내부자거래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고 시세조종과 사기적 거래에 대한 제재도 강화했다.

미국이 자산의 ‘분류’를 만들고 있다면 일본은 이미 시장을 ‘금융규제 안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에 착수한 셈이다.

한국의 변화는 결제 인프라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프로젝트 한강 2단계를 통해 예금토큰 실증 범위를 크게 늘렸다.

참여 은행은 기존 7곳에서 경남은행과 아이엠뱅크를 포함한 9곳으로 확대됐다. 예금토큰 지갑은 최대 10만개에서 50만개로 늘고 지갑당 보유한도도 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상향됐다.

사용처도 달라졌다. 기존 결제에서 지갑 간 송금이 추가됐고 자동 전환, 생체인증, 사업자용 비대면 지갑, 현금영수증 발행 기능 등이 새로 들어갔다.

특히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까지 포함됐다는 점은 예금토큰의 활용 범위가 개인 결제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마트컨트랙트를 활용한 직접 지급 방식도 허용돼 향후 정책자금이나 보조금 지급 분야까지 확장할 여지가 생겼다.

국내 실험은 국경도 넘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의 프로젝트 아고라 실거래 테스트에 참여해 토큰화 지급준비금과 은행예금을 이용한 국가 간 지급결제를 시험했다.

원화와 달러, 유로, 파운드, 스위스프랑, 엔화 등 6개 통화를 대상으로 17개 시나리오에서 30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한강 플랫폼과 한국은행 금융망을 연결한 데 이어 향후 프로젝트 아고라와의 상호운용성까지 검토할 계획이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프로젝트 한강은 규제 샌드박스 기반의 실증사업이고 예금토큰의 법적 지위나 상시 서비스 전환 여부, 아고라의 상용화 일정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흐름은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디지털자산 논의가 스테이블코인이나 거래소 규제를 넘어 은행예금과 중앙은행 결제망을 어떻게 토큰화할 것인지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더 직접적인 변화는 2027년에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다시 유예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현행법이 그대로 유지되면 2027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양도·대여소득에 과세가 시작된다. 2022년 이후 세 차례 미뤄졌던 만큼 이제 시장의 질문도 ‘과세를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현 제도에서는 연간 가상자산 소득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뒤 소득세 20%를 적용한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실효세율은 22%다.

가상자산을 다른 가상자산으로 교환해 얻은 이익도 과세 대상에 포함되고, 같은 과세기간의 이익과 손실은 합산할 수 있다. 다만 남은 손실을 다음 해로 이월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기존 보유자에게 중요한 부분도 있다. 2027년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가상자산은 실제 취득가격과 2026년 12월 31일 시가 가운데 높은 금액을 취득가액으로 인정하는 구조다.

반면 스테이킹과 에어드롭, 채굴, DeFi 등은 아직 세부적인 소득 분류와 계산 방식이 남아 있다. 2027년 시행을 앞두고 이 영역의 과세기준이 얼마나 명확하게 마련되느냐가 시장 혼선을 줄일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변화의 본질은 ‘규제 강화’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각국 정부는 디지털자산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금융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설계하고 있다.

미국은 디지털자산의 법적 경계를 긋고, 일본은 금융상품 규제 안으로 옮겼다. 유럽은 디지털화폐의 실제 결제를 준비하고 영국은 국채와 담보시장까지 토큰화를 시도한다. 한국 역시 예금토큰과 국제 지급결제 실험을 확대하는 동시에 가상자산 과세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7년은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단순히 또 하나의 연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과세 시행, 유럽의 디지털유로 파일럿, 영국의 디지털 국채, 미국의 주요 제도 시행 논의가 한 시기에 맞물릴 수 있어서다.

그동안 디지털자산 시장의 승자를 가른 것은 가격과 거래량이었다. 앞으로는 어떤 자산과 플랫폼이 은행과 중앙은행, 증권시장, 결제망에 연결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코인 시장’이 제도권 금융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자체가 토큰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자산 경쟁의 다음 라운드는 가격 차트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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