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200 자사주 소각 2024년 10.1조→올해 40.5조…추가 예정·미정도 47조
반기보고서부터 임원 보수와 총주주수익률 비교 공시…‘주가 성과-보상’ 연결 확인
TSR과 총주주환원율은 다른 지표…SK·SK하이닉스 등 추가 소각 반영 시 환원율 급등
[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국 증시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을 얼마나 늘렸는지만 보는 데서 벗어나 벌어들인 돈을 주주에게 얼마나 돌려줬는지, 그 과정에서 주주가 실제로 얼마의 수익을 얻었는지까지 따지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변화의 속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숫자가 자사주 소각이다. 코스피200 기업의 자기주식 소각액은 2024년 10조768억원에서 지난해 19조4791억원, 올해 40조4863억원으로 불어났다. 불과 2년 만에 네 배로 커진 규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실제 집행된 올해 자사주 소각액만 약 39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소각액의 두 배를 넘어섰다. 연내 예정된 물량까지 포함하면 40조원을 웃돈다.
아직 숫자에 잡히지 않은 물량도 47조원가량 남아 있다. 내년 1월 소각이 확정된 SK의 4조8343억원을 비롯해 소각 결정 후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12개사의 물량이 약 42조2343억원에 달한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9일 약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놓았다. 예정 물량이 실제 소각으로 이어지면 올해 이후 국내 증시의 주주환원 규모는 다시 한 단계 커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돈을 많이 돌려주는 것만 달라진 것도 아니다. 올해 반기보고서부터는 경영진이 받은 보수와 주주가 얻은 수익을 같은 틀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사·감사의 보수를 영업이익과 총주주수익률(TSR) 등 성과지표와 함께 공시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금융감독원도 올해 4월 산정 방법과 변경 사유 등을 구체적으로 적도록 서식을 손질했고, 올해 8월 제출된 반기보고서부터 처음 적용됐다.
과거 임원 보수 공시가 "누가 얼마를 받았나"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그만큼 받을 성과를 주주에게 돌려줬나"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총주주수익률(TSR)은 주가 상승분과 배당을 합쳐 일정 기간 주주가 실제로 얻은 수익을 나타낸다. 반면 총주주환원율은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 가운데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에게 돌려준 비율을 뜻한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기업의 배당이나 소각이 많지 않아도 TSR은 높아질 수 있고, 반대로 주가가 부진해도 회사가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늘리면 총주주환원율은 올라간다.
일부 기업은 두 지표의 혼동을 막기 위해 공시 방식부터 바꾸고 있다. 현대차는 TSR과 별도로 총주주환원율을 명시하고 산정 방법까지 공개했다. 총주주환원율은 당기 27%, 전기 35%, 전전기 30%로 제시했다.
LS일렉트릭은 기초·기말 주가와 주당배당금을 따로 공개해 투자자가 TSR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CJ도 사업연도 말 주가를 함께 제시해 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였다.
임원 보상과 주주 수익이 실제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례도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와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3개 구간에서 TSR이 모두 플러스를 기록한 가운데 주식연계 보상 가치도 함께 증가했다.
SK하이닉스 대표이사의 보수총액은 2024년 19억8600만원에서 지난해 42억3900만원, 올해 상반기 260억9500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급여는 같은 기간 23억7200만원에서 22억9000만원, 올해 상반기 18억1200만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보수의 대부분을 끌어올린 것은 고정급이 아니라 주식연계 보상이었다.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이익과 주가상승연계권리(SARs), 성과조건부주식(PSU)을 합친 금액은 217억5900만원에 달했다.
아직 지급되지 않은 주식보상 가치도 주가와 함께 뛰었다. 미지급 주식보상 7만4087주에 사업연도 말 주가를 적용한 시장가치는 약 1963억원으로 평가됐다.
보수총액과 미지급 주식보상 시장가치를 합친 규모는 2024년 약 146억원에서 지난해 513억원, 올해 상반기 2224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TSR은 24%, 282%, 292%를 기록했다.
고정급을 크게 늘린 것이 아니라 주가와 연결된 변동보상의 가치가 올라간 구조다. 주주가 높은 수익을 얻을수록 경영진이 가진 주식보상의 가치도 함께 상승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이사 전체의 주식기준보상 지급액은 2024년에는 없었지만 지난해 28억500만원, 올해 상반기 53억3000만원으로 늘었다.
대표이사의 미지급 주식보상 시장가치는 2024년 34억3600만원에서 지난해 165억2500만원, 올해 상반기 185억6600만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가가 1만7550원에서 7만5300원, 8만6800원으로 상승한 영향이 그대로 반영됐다.
국내 기업의 보수 체계가 미국식 성과연동 구조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기업들이 경영진이 실제로 얻은 보수와 TSR을 여러 해에 걸쳐 비교해 공개하고 있다.
주주환원 규모를 볼 때도 단순히 환원율 하나만 보고 판단하면 왜곡될 수 있다. 올해 삼성전자의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 예상액을 합친 금액은 약 50조5022억원으로 코스피200 기업 가운데 가장 크지만 총주주환원율은 15.7%로 계산된다.
올해 지배주주순이익 전망치가 321조원을 웃돌면서 분모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환원금액 자체는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익 증가 속도가 더 빨라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현재 반영된 배당과 자사주 소각액은 약 19조3944억원이지만 지배주주순이익 전망치가 252조6213억원까지 불어나면서 총주주환원율은 7.7%에 머문다.
다만 아직 반영되지 않은 40조원 규모의 추가 소각을 포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SK하이닉스의 총주주환원율은 23.5%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금융주에서도 추가 소각 여부에 따라 환원율 변화가 크다. KB금융은 현재 79.2%에서 89.8%, 하나금융지주는 36.8%에서 46.9%, 우리금융지주는 40.6%에서 45.3%로 높아질 수 있다.
SK는 현재 5.2%에 불과하지만 내년 1월 예정된 4조8343억원 규모의 소각까지 반영하면 45.3%로 뛰어오른다. KT는 42.4%에서 77.1%, JB금융지주는 43.7%에서 57.1%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지주회사끼리도 차이가 뚜렷하다. 올해 예상 총주주환원율은 한화 74.3%, LG 64.8%, CJ 27.8%, 효성 24.0%, 두산 14.9%, HD현대 10.8%로 나타났다.
반면 올해 상반기 TSR은 SK가 224.5%로 가장 높았고 두산 95.7%, 효성 52.8%, LG 20.6%, HD현대 7.0% 순이었다. 회사가 많이 돌려준 기업과 주주가 높은 수익을 거둔 기업의 순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배당수익률이나 자사주 매입 금액 한 가지만으로 주주친화 기업을 가려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가운데 얼마나 환원했는지, 실제 주가와 배당을 합친 주주 수익은 어느 정도였는지, 경영진의 보상은 그 성과와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주 소각은 배당과 효과가 다르다. 현금을 한 번 지급하고 끝나는 배당과 달리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남아 있는 주주의 지분율과 주당가치에 영향을 준다.
올해 이미 40조원에 가까운 자사주가 사라졌고 앞으로 소각될 가능성이 있는 물량도 47조원가량 남았다.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기만 하고 보유하던 과거와 달리 실제로 없애는 단계까지 가는 사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결국 한국 증시의 주주환원 경쟁은 "얼마나 많이 주느냐"의 경쟁에서 "기업가치와 경영진 보상까지 얼마나 주주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느냐"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경영진만 보상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가와 배당,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의 성과까지 함께 커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다음 평가 기준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사주 소각이 2년 만에 네 배로 늘어난 것은 숫자로 확인되는 첫 변화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이제 투자자가 회사가 번 돈, 주주가 번 돈, 경영진이 받은 돈을 하나의 흐름으로 비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