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스페인 자주포 현대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단순 완제품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결합한 방산 수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자국 생산과 현지조달 요구가 빠르게 강화되는 만큼, 이미 호주와 루마니아 등에서 쌓은 현지화 경험이 향후 신규 수주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은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200만원을 유지했다. 기존 K9 자주포와 천무의 제품 경쟁력에 현지화 역량까지 더해지면서 수주 가능 시장이 동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서유럽과 미국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스페인 방산업체 Indra Sistemas와 K9 자주포 등을 공급하기 위한 수출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구체적인 계약금액과 계약기간은 비밀유지 조건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계약은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자주포 현대화 사업의 일부다. 스페인 정부와 Indra·EM&E 컨소시엄이 체결한 전체 사업 규모는 37억6000만유로로, 자주포 128문과 탄약보급차 128대, 구난차 21대, 지휘차량 59대 및 군수지원체계 등을 도입하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Indra가 공동개발하는 범위는 K9을 기반으로 한 자주포 128문과 탄약보급차 120대, 구난차 21대, 지휘통제차량 11대다. Indra가 차체와 전장체계 등을 스페인 현지에서 생산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계열 플랫폼의 생산기술과 주요 부품을 제공하는 구조다.
이번 사업의 의미는 수출 물량 자체보다 현지화 범위에 있다는 평가다. 기존 해외 수주가 완성품이나 부품 공급에 무게를 뒀다면 스페인에서는 단순 조립을 넘어 K9 계열 기술 이전과 현지형 플랫폼 공동개발까지 협력 범위가 확대됐다.
한국투자증권은 방산 수출 시장에서 현지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바뀌고 있다고 봤다. EU는 2035년까지 역내 방산조달 비중을 6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대출과 보조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역외 부품 원가 비중도 35%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중동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의 절반을 자국에서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UAE도 국영 방산기업 EDGE를 중심으로 글로벌 업체들과 합작법인 설립과 기술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각국의 정책이 자국 생산과 공급망 구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완제품 직수출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은 점차 좁아질 수밖에 없다. 현지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구축하고 기술을 이전하는 능력이 실제 수주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소로 떠오르는 이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현지화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자체 생산거점을 구축한 뒤 현지 양산을 시작했고 루마니아에서는 최대 80% 수준의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지 기업과 공동으로 K9 기반 플랫폼을 개발한다. 현지 기업이 차체와 전장체계를 생산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핵심 플랫폼 기술과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이어서 유럽 내 생산기반 확대와 기술협력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자주포 현대화 사업 참여를 계기로 현지 생산과 공급망 구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 수주로 이어질 경우 전통적인 방산 강국인 미국에서도 현지화를 앞세운 시장 진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현지화는 초기 수주 이후 추가 매출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다. 생산기술 이전과 현지 조달이 이뤄지면 단발성 완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부품 공급과 유지·보수·정비(MRO), 후속 개량 등 장기간 매출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실제 해외 사업을 통해 생산시설 구축과 공급망 현지화, 기술 이전까지 수행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경쟁사와의 차별화 요소로 평가했다. 주요 무기 도입국이 현지화 조건을 강화할수록 이러한 레퍼런스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존 K9과 천무의 수출 실적이 제품 경쟁력을 입증했다면 앞으로는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가 추가 수주를 결정하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동유럽과 아시아 중심이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출 무대가 서유럽과 미국으로 확대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목표주가 200만원을 유지했다. 2028년 예상 주당순이익(EPS)을 기준으로 자본비용(WACC) 7.5%를 할인하고 목표 주가수익비율(PER) 34.6배를 적용한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은 “기존 K9과 천무의 제품 경쟁력에 현지화 역량이 더해지면서 수주 가능 시장도 동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서유럽과 미국 등 전통적인 방산 강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생산시설 구축과 공급망 현지화, 기술 이전을 실제로 수행한 경험은 신규 수주 과정에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며 “주요 무기 도입국의 현지화 요구가 강화되는 만큼 축적된 역량을 기반으로 신규 시장에서 수주 확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