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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랜이 흔드는 통신장비 판도…대형 SI 균열, K-벤더엔 기회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8-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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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G·LTE·5G 거치며 글로벌 장비업체 M&A로 과점화
오픈랜 도입 땐 RU·DU·CU 호환성 확대…기존 폐쇄형 공급망 흔들
삼성전자·후지쯔와 거래 이력 갖춘 국내 벤더, 5G SA·6G서 점유율 확대 기대

국산 오픈랜 패키지 개념도./사진=NIA 제공이미지 확대보기
국산 오픈랜 패키지 개념도./사진=NIA 제공
[더파워 이경호 기자] 세계 통신장비 시장을 지배해 온 ‘폐쇄형 공급망’이 오픈랜(Open RAN)을 계기로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3G와 LTE, 5G를 거치며 인수합병을 통해 소수 대형업체 중심으로 재편됐던 통신장비 시장이 5G SA와 6G에서는 다시 다수 사업자가 경쟁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장비 간 호환성이 있다. 지금까지 이동통신 기지국은 특정 시스템통합업체(SI)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함께 사용해야 해 다른 회사 장비를 섞기 어려웠지만, 오픈랜이 확산하면 표준화된 장비를 여러 업체가 공급할 수 있다.

하나증권은 12일 통신장비 업종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하며 오픈랜 확산이 글로벌 SI 시장 재편을 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공급망 내부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공급 경험을 확보한 국내 무선통신장비 업체의 시장 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통신장비 시장은 지난 20년간 경쟁보다 통합의 역사를 걸었다. 2005년 글로벌 시장에서는 에릭슨이 21%, 알카텔-루슨트가 20%, 노키아지멘스가 18%, 노르텔이 10%를 차지하는 등 다수 업체가 경쟁했다.

하지만 알카텔과 루슨트가 합병하고, 이후 알카텔-루슨트가 다시 노키아에 인수되는 등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비수기와 성수기 사이의 수요 변동이 큰 산업 특성에 중국 국영 장비업체의 저가 공세까지 겹치면서 규모가 작은 업체들의 생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금력과 통신사 영업력을 갖춘 업체가 시장을 흡수했다. 2024년 글로벌 무선 통신장비 시장은 에릭슨 28%, 화웨이 26%, 노키아 16%, ZTE 14%로 상위 4개사가 84%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4%, NEC는 3% 수준이었다.

과거 통신 기술의 표준화가 국가와 지역 간 진입장벽을 허물면서 대형 사업자를 만들었다면 오픈랜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시장을 흔들 전망이다.

기존 기지국 장비는 RU(무선장치), DU(분산장치), CU(중앙장치)까지 사실상 하나의 SI 생태계에 묶여 있었다. 한 업체의 장비를 채택하면 주요 장비와 부품을 같은 공급망 안에서 조달해야 하는 구조였다.

오픈랜의 핵심은 이 연결고리를 끊는 데 있다. 인터페이스를 개방하고 장비를 표준화하면 RU와 DU, CU를 서로 다른 업체에서 공급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특정 대형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가격과 성능을 비교해 장비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에릭슨이나 노키아처럼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진 기존 대형 SI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삼성전자와 후지쯔에는 고객사를 넓힐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게 하나증권의 판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완제품 시장과 부품 시장의 방향이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랜으로 SI 시장의 점유율은 분산될 가능성이 있지만 장비 안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하는 벤더 시장에서는 오히려 상위 업체 중심의 집중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장비업체별 호환 규격이 달라 각 SI의 공급망 안에 중소 부품업체가 따로 존재했다. 특정 SI에 납품하는 벤더가 다른 회사 장비에는 같은 제품을 공급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표준화가 진행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하나의 벤더가 여러 SI에 같은 계열의 부품을 공급할 수 있어 고객 기반이 넓어진다. 생산능력과 가격 경쟁력, 품질 인증, 글로벌 납품 경험을 갖춘 업체가 더 많은 주문을 가져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2000년대 글로벌 SI 시장에서 자금력과 영업력이 강한 업체가 살아남았던 것처럼 오픈랜 시대의 부품 공급망에서는 생산력과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한 상위 벤더가 점유율을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국내 통신장비 업체가 주목받는다. 하나증권은 글로벌 SI를 대상으로 의미 있는 납품 이력을 확보한 부품업체가 사실상 국내 업체에 집중돼 있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KMW와 쏠리드, HFR이 꼽힌다. 오픈랜의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되는 삼성전자와 후지쯔 공급망에서 이미 사업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RFHIC 역시 장기적으로 주목할 상위 무선장비 업체로 제시됐다. 특정 SI의 투자 일정이나 사업 결정에 실적이 크게 흔들렸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고객사를 다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오픈랜의 또 다른 효과다.

기존 통신장비 업체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고객사 의존도였다. 통신사가 투자를 미루거나 주요 SI가 공급망을 변경하면 부품업체 실적도 크게 흔들렸다.

오픈랜이 자리 잡으면 하나의 SI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장비업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고객사가 늘어날수록 특정 사업자의 투자 일정에 실적 전체가 좌우되는 위험도 낮아진다.

시장 재편의 시점은 5G SA와 6G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통신사를 중심으로 차세대 네트워크에서 오픈랜 표준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증권은 향후 어퍼 C밴드 투자부터 국내 무선장비업체의 시장점유율 확대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는 통신장비 업종이 단순한 ‘5G 투자 재개’ 이상의 변화를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통신사의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시점에 장비업체 실적이 일제히 좋아졌다가 투자가 끝나면 다시 급감하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오픈랜에서는 투자 규모뿐 아니라 공급망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가 시작될 때 기존 대형 SI가 독점하던 물량 가운데 일부가 신규 사업자와 부품업체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시장 전체가 커지는 효과와 기존 시장의 점유율을 빼앗아오는 효과가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오픈랜이 곧바로 대형 SI의 지배력을 무너뜨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통신사와의 거래 경험, 대규모 네트워크 구축 능력, 유지보수 체계는 여전히 기존 대형업체의 강점이다.

실제 시장이 바뀌려면 통신사가 개방형 장비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입하는지, 서로 다른 업체의 장비를 결합했을 때 성능과 안정성이 기존 폐쇄형 장비와 비교해 어느 수준까지 올라오는지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통신장비 시장의 경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3G에서 5G까지는 M&A를 통한 ‘업체 수 감소’가 핵심이었다면 5G SA와 6G에서는 표준화된 공급망을 바탕으로 장비 선택지가 다시 늘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나증권은 쏠리드와 RFHIC, LIG아큐버, KMW 등을 비롯한 통신장비 업체에 매수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KMW와 쏠리드, HFR, RFHIC 등 상위 무선장비업체를 대상으로 한 장기 투자 전략이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오픈랜 표준화가 진행될수록 SI 의존도와 사업 의사결정에 따른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며 “다가올 어퍼 C밴드부터는 시장점유율 확대에 따른 국내 무선통신장비주의 실적 향상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6G를 앞둔 통신장비 산업의 관전 포인트는 통신사의 투자 규모만이 아니다. 폐쇄형 공급망이 얼마나 빠르게 열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기존 대형 SI의 몫을 가져가느냐가 다음 사이클의 승자를 가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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