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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심장병 이겨낸 15세 소녀, 병동서 피운 예술의 꿈

유연수 기자

기사입력 : 2025-12-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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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백혈병 치료를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서로 서윤이와 엄마는 영광의 상처라 부르며, 이식 받은 날을 ‘모녀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급성백혈병 치료를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서로 서윤이와 엄마는 영광의 상처라 부르며, 이식 받은 날을 ‘모녀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더파워 유연수 기자] 급성 백혈병과 심장병으로 5년간 병원 생활을 이어온 소녀가 투병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해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공방을 열었다. 서울성모병원은 19일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솔솔바람’의 돌봄 속에서 치료를 마친 정서윤 양이 부산에 미술공방을 열고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고 밝혔다.

정서윤 양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21년 여름, 갑작스러운 고열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태어나 처음 서울을 찾은 날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무균병동에서 홀로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솔솔바람’이 정서윤 양과 가족의 곁을 지켰다. 최선희 솔솔바람 전문간호사는 보호자에게 치료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병실에 혼자 있던 아이에게 가족의 사진과 편지를 전하며 정서적 돌봄을 이어갔다. 솔솔바람은 중증질환 환아와 가족을 대상으로 의료·정서·사회적 지지를 통합 제공하는 팀이다.

영재 피아노 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정서윤 양에게 긴 병원 생활은 큰 시련이었다. 고용량 항암 치료 이후 어린 시절 진단받았던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이 악화돼 심장 시술까지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음악 대신 그림을 선택한 정서윤 양은 아크릴판 위에 가족과 의료진, 병동에서 만난 환아들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혈모세포이식과 회복 기간 동안 정서윤 양의 그림은 병동의 작은 위로가 됐다. 미취학 환아에게는 로봇과 공룡을, 또래 환아에게는 자신을 닮은 수채화를 선물했고, 병동 곳곳의 수액 폴대에는 아이들이 받은 그림이 걸렸다. 입원 중 맞은 생일에는 병동 휴게실에서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 가족과 의료진, 환아들이 함께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첫 이식 이후인 2023년 병이 재발했지만 정서윤 양은 다시 그림을 그리며 병동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성탄절과 설날 등 특별한 날에는 무균병동 안에서 작은 축제를 열었고, 병원 생활의 경험을 웹툰으로 그려 다른 환아들과 나누기도 했다.

정서윤 양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족의 헌신이 있었다. 2022년에는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이 조혈모세포 기증에 참여했고, 2023년 재발 이후 두 번째 이식은 어머니가 기증자로 나섰다. 가족은 이식 과정에서 남은 상처를 ‘영광의 상처’라 부르며, 각각의 이식일을 ‘남매의 날’, ‘모녀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거의 5년간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정서윤 양은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재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 중이며, 치료 과정에서 완성한 작품과 웹툰, 병동에서 그린 그림들은 부산의 미술공방에 전시돼 있다. 앞으로는 디자인 상품 제작을 통해 병동에서 나눴던 희망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조빈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긴 치료 과정 속에서도 예술로 자신과 주변을 위로해 온 정서윤 양이 공방을 열게 돼 의료진 모두가 기쁘다”며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건강하게 꿈을 키워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선희 솔솔바람 전문간호사는 “제한된 환경에서도 정서윤 양은 주어진 재료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왔다”며 “그 과정 자체가 아이의 회복이자 성장의 증거였다”고 말했다.

정서윤 양은 “입원 중 눈이 내리던 날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며 “몸이 아파도 좋은 순간은 분명히 있었고, 앞으로도 그림으로 그런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연수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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