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의약품 공급 불안 해소를 명분으로 한 대웅제약의 유통 구조 개편 계획을 두고 유통·약사 단체가 “유통 질서 훼손”과 “약사법 위반 소지”를 공개 제기하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19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약품유통협회와 대한약사회는 최근 대웅제약이 추진 중인 '블록형 거점 도매' 유통 정책이 의약품 유통 질서와 약국 현장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입찰 공고 철회와 정책 재검토를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대웅제약은 이달 5일 홈페이지에 '블록형 거점 도매업체 선정' 입찰 공고를 내고,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각 권역마다 1곳의 거점 도매를 지정해 자사 의약품 공급을 맡기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한 권역에 여러 도매업체가 병존하던 기존 구조에서 거래 창구를 소수 도매사로 좁히는 대신, 품절 의약품의 원활한 공급, 실시간 배송·재고 추적 시스템, 반품 시스템 일원화 등을 내세워 공급 안정성과 유통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대웅그룹의 거점 도매를 통한 의약품 유통 추진은 국내 의약품 유통 질서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거점 도매 선정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의약품 유통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 공공적 산업인 만큼, 특정 의약품유통업체 중심의 거점화는 중소·중견 도매업체를 배제하고 지역 기반 유통망을 약화시켜 지역 약국·병원의 의약품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급이 일부 도매에 집중될 경우 유통 독점 구조가 고착화되고 수급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법적 리스크 가능성도 거론됐다. 유통협회는 대웅제약의 정책이 특정 도매상에만 의약품을 공급하는 행위를 제한한 약사법 시행규칙 제44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으며, 다른 도매업체에 대한 부당한 거래 거절에 해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거래 당사자인 도매업계와 충분한 협의 없이 사실상 따라야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상생이 아닌 일방적 정책 강행으로, 이른바 ‘갑질’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약사회도 최근 대웅제약 대표이사 앞으로 공문을 보내 '블록형 거점 도매 제한경쟁입찰' 정책 철회를 공식 요청했다. 약사회는 대웅제약이 발표한 거점 도매 선정 방안에 대해 “대웅제약 의약품이 특정 거점 도매를 통해서만 공급되는 구조가 되면, 다수 약국이 기존 거래 관계와 무관하게 제한된 도매업체와의 거래를 강요받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물류 여건에 따라 의약품 입고 지연이나 공급 공백이 발생하면 환자의 적시 조제·투약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약사회는 이미 의약품 수급 불안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급 주체를 더 좁히면 특정 품목 수요가 거점 도매에 집중되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수급 불안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거점 도매 중심 공급 체계는 도도매 거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반품 기준 불명확, 반품 거절, 정산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해 약국의 행정·재정 부담을 키우고 약국과 유통업체 간 마찰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공통적으로 “약국 및 유통업계와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추진되는 방식은 수용할 수 없다”며 입찰 공고의 즉각 철회와 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대웅제약은 블록형 거점 도매 도입이 의약품 공급 안정과 유통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거점 도매 운영 방침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유통·약사 단체와 제약사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