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035년 4곳 안팎 우선 지정…인천·경기·강원 17개 시·군 신청 가능
접경지역 중첩규제·낮은 재정자립도 부담…산업연 “국내 최고 수준 지원 필요”
[더파워 이경호 기자] 남북 경제협력의 거점으로 추진되는 평화경제특구가 올해 말 첫 지정을 앞두고 있다. 제도적 틀은 마련됐지만 접경지역에 겹겹이 적용되는 수도권·군사·환경 규제와 부족한 투자 인센티브, 재원 조달 문제가 실제 개발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26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과 2027년 두 차례에 걸쳐 평화경제특구를 지정할 계획이다. 2026~2035년을 대상으로 한 제1차 기본계획 기간에는 4곳 안팎의 특구를 우선 지정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평화경제특구는 국내 남한지역에 조성되는 남북 경제협력 거점이다. 북한의 참여를 전제로 먼저 북한지역에 산업단지를 만드는 방식과 달리 남한에서 제도와 기반시설을 먼저 구축해 향후 남북경협 재개에 대비하는 구조다.
지정 신청이 가능한 곳은 인천 2곳, 경기 8곳, 강원 7곳 등 모두 17개 시·군이다. 인천 강화·옹진, 경기 고양·파주·김포·동두천·양주·포천·연천·가평, 강원 춘천·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이 대상이다.
이들 지역의 여건은 녹록지 않다. 강화와 옹진, 가평, 연천, 고성, 양구, 철원, 화천 등 대상지역의 절반가량이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된다. 재정자립도 역시 전국 평균인 48.6%에 미치지 못해 지방정부 자체 역량만으로 대규모 개발과 투자를 끌어내기 어려운 구조다.
가장 큰 장애물은 중첩규제다. 접경지역에는 수도권 규제와 군사시설보호구역을 비롯해 물·산림·문화재 등 환경·문화재 규제가 동시에 적용된다. 각 규제의 목적과 적용 범위가 달라 특구로 지정되더라도 개발 과정에서 여러 규제를 개별적으로 풀어야 할 수 있다.
산업과 생활 인프라도 부족하다. 교통과 물류, 주거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까지 진행되고 있다.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도 다른 지역에는 없는 접경지역 고유의 투자 부담으로 꼽힌다.
이에 비해 현재 마련된 지원책은 접경지역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과 개발비용을 상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지적이다.
평화경제특구법은 기업 투자와 개발사업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지원 대상과 규모는 확정하지 않았다. 제1차 기본계획에도 국비 투입 규모가 제시되지 않았다.
법인세와 보조금 등도 상당수가 평화경제특구에만 적용되는 별도의 혜택이 아니라 기존 법령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평화경제특구라는 이름을 달더라도 다른 특구와 구별되는 투자 조건을 기업에 제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평화경제특구의 투자 여건을 만들기 위해 국내에서 운영되는 특구 가운데 최고 수준의 인센티브와 규제특례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인세·지방세 감면 비율과 기간을 확대하고 지방투자 촉진 보조금 지원비율을 높이는 방안, 기업 이전·고용 보조금과 외국인 근로자 우선 배정 등 인력 지원 방안이 제시됐다.
개발비용을 낮추기 위한 규제특례도 필요하다고 봤다. 특구로 지정된 구역을 대상으로 수도권·군사·환경 규제를 완화하거나 지방자치단체 요청에 따라 규제를 조정할 수 있는 별도 체계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재원 마련도 남아 있다. 국가적 목적으로 추진되는 특구인 만큼 기반시설 구축 등에 국비가 필요하고 지방균형발전특별회계와 남북협력기금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제안이다.
다만 남북협력기금의 경우 남북협력이 재개되기 전 대규모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 ‘평화경제특구활성화투자펀드’를 조성해 초기 개발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정부 내 의사결정 구조도 정비 대상이다. 현재 통일부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고 평화경제특구위원회가 최상위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지만 규제와 세제, 산업정책, 재원 문제가 여러 부처에 걸쳐 있어 두 부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 적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국무조정실 등 범정부 조정기능과 연계하고 평화경제특구위원회에 통합심의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규제특례와 인센티브, 재원 문제를 여러 부처가 따로 처리하기보다 하나의 틀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평화경제특구는 분단으로 개발이 제한됐던 접경지역에 새로운 투자 기반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향후 남북경협의 거점을 만드는 이중 목적을 갖는다. 연말 첫 지정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지정된 지역이 기존 산업단지와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줄 제도와 재원을 갖추는 일이다.
산업연구원은 특구의 성패를 위해 파격적인 정부 지원과 규제특례, 국비 투입, 범부처 조정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는 출발선에 섰지만 기업이 실제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작업은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