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로봇이 물리적 공간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 경쟁이 글로벌 완성차·로봇업계의 새 화두로 떠오르는 가운데, 현대차·기아가 전용 AI 반도체를 앞세워 로봇 사업 본격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파운드리 2026’에서 AI 반도체 기업 딥엑스(DEEPX)와 협력해 로봇용 온디바이스(On-Device) AI 칩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9일 밝혔다.
CES에서 올해 처음 마련된 ‘파운드리(Foundry)’ 프로그램은 AI·블록체인·양자기술 등 3대 혁신기술을 통합적으로 논의하는 전시·발표 플랫폼으로,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은 이 자리에서 피지컬 AI 전략을 공개했다.
피지컬 AI는 로봇이 디지털 공간이 아닌 실제 환경에서 센서로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개념이며, 온디바이스 AI는 이러한 인공지능 기능을 클라우드가 아닌 로봇 기기 내부에서 직접 수행하는 방식을 뜻한다.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장 현동진 상무는 “피지컬 AI를 실현하기 위해 로보틱스랩은 ‘공간의 로봇화’라는 비전 아래 로봇의 AI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며 “로보틱스랩에서 자체 개발한 AI 제어기를 이미 2024년 6월부터 복합 문화공간 ‘팩토리얼 성수’의 안면인식 서비스 ‘페이시(Facey)’와 배달 로봇 ‘달이 딜리버리(DAL-e Delivery)’에 적용해 성능과 품질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와 딥엑스가 공동 개발한 온디바이스 AI 칩은 소비전력이 5W 이하인 초저전력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검출·분석해 인지와 판단까지 한 번에 수행하며, 지하 주차장이나 물류센터처럼 네트워크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네트워크를 경유하는 클라우드 방식과 달리 로봇 내부에서 직접 연산이 이뤄져 반응 속도가 빠르고, 외부 통신 구간이 줄어드는 만큼 보안성도 강화된다. 서비스 환경에 따라 인식·제어 기능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어 특정 업종·공간에 최적화된 로봇 개발에도 유리하다.
이번 협력은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의 AI·소프트웨어 역량과 딥엑스의 반도체 설계 기술을 결합해 비용 효율성과 연산 성능, 공급 안정성 간 균형을 맞춘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현대차·기아는 자체 로봇 플랫폼에 최적화된 AI 칩을 선제적으로 확보함으로써 향후 양산될 로봇에 탑재할 핵심 솔루션을 미리 준비했으며, 반도체 공급망 측면에서도 유연성과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회사 측은 고령화 심화,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 서비스업·물류 분야의 인력 부족 등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피지컬 AI 인프라가 필수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이번 온디바이스 AI 칩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내·외 환경에서 자율 이동·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확충하고, 공항·병원 등 시설에서 진행 중인 실증 사업을 확대해 산업 적용 범위를 넓혀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는 수십년간 축적한 자동차 산업 밸류체인을 바탕으로 로봇의 양산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국내 배터리 업계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완성차 제조 공정에서 확보한 품질 관리·공급망 운영 노하우를 로봇 생산에 접목하고, 물류·서비스·모빌리티 영역으로 로봇 활용 분야를 넓혀 국내 로보틱스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동진 상무는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은 단순히 로봇을 한 대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로봇 생태계를 전체 파이프라인 관점에서 구축하고 있다”며 “피지컬 AI 파이프라인의 마지막 접점에서 사용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고, 저전력으로 움직이면서도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로봇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