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이재명 정부가 한때 원점 재검토와 공론화를 예고했던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 계획을 결국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예정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11차 전기본은 지난해 2월 여야 합의로 확정된 중장기 전력 수급 계획으로, 2037년과 2038년에 2.8GW 규모 대형 원전 2기를 새로 짓고 2035년까지 0.7GW 규모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전 건설 계획이 전기본에 포함된 것은 2015년 7차 전기본(신한울 3·4호기) 이후 10년 만이다. 다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민 동의가 부족하다”며 원점 재검토와 공론화가 선언되면서 계획 이행 여부는 한동안 불투명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11차 전기본에 따른 신규 원전 건설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뒤, 취임 후에는 “정부 계획으로서 11차 전기본을 존중하지만 신규 원전 건설 여부는 국민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톤을 낮췄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가능한 부지가 있고 안전성이 담보되면 짓겠지만 현실성이 크지 않다”고 언급해, 11차 전기본상 원전 건설이 실제 추진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해진 바 있다.
이후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 우려가 커지고,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정책 기조는 다시 원전 확대 쪽으로 선회했다.
정부는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쳐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 토론회를 열고, 이달에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에 의뢰해 미래 에너지 관련 대국민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기후부에 따르면 원전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0~90% 수준,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반드시’ 또는 ‘가급적’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두 조사 모두에서 60%를 넘겼다.
김 장관은 “전력 분야 탄소 감축을 위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줄여야 하는 만큼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심의 전력 운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전력망이 주변 국가와 연결되지 않은 ‘에너지 섬’이자 동서 길이가 짧아 태양광만으로 전력망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문재인 정부 당시 정책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기후위기와 전력 수급 여건이 달라졌다”고도 말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은 조만간 신규 원전 건설 부지 공모에 착수한다. 약 5~6개월간의 부지 평가·선정 과정을 거쳐 2030년대 초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건설 허가를 신청하고, 심사를 통과하면 공사에 들어가 2037~2038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11차 전기본이 전제한 대형 원전 건설 기간은 부지 선정부터 준공까지 13년11개월 수준으로, 당초 계획보다 부지 선정이 지연된 만큼 일정이 빠듯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기후부는 “13년11개월에는 부지 선정 절차가 모두 포함돼 있어 2037년·2038년 준공 목표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SMR 건설은 이미 지난해 11월 확정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반영돼 추진이 기정사실화된 상태다. 기후부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의 역할을 확대하고, 원전의 경직성을 줄이기 위한 탄력운전도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3분기 마련될 제12차 전기본 실무안에는 AI·전기차 확산에 따른 전기화 수요 전망과 함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 믹스, 분산형 전력망 구축 방안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공론화 과정의 성과와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토론회와 여론조사 등 다양한 형태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결론을 도출했다”고 강조하지만, 환경·시민단체는 논의가 원전의 안전성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신규 부지 선정 기준과 입지 갈등, 사고 발생 시 주민 보호와 책임 소재 등 핵심 쟁점을 사실상 비껴갔다고 비판한다.
탈핵시민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정책 토론회와 여론조사 어디에서도 핵폐기물 처리와 부지 갈등, 사고 책임 문제 등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원전 건설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 기술·경제 논의에만 치우쳤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문항이 “원전 건설 계획을 추진해야 하느냐 마느냐”, “원전이 안전하다고 보느냐 위험하다고 보느냐” 등 인상 위주 질문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책 결정의 시간적 비용을 둘러싼 비판도 거세다. 11차 전기본 확정 직후부터 신규 원전 부지 공모와 선정이 진행됐다면 이미 부지 후보지가 윤곽을 드러냈을 것이라는 게 원전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원전 건설에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특성상, 공론화와 재검토 과정으로 준공 시기를 스스로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에너지 정책이 정치 일정에 휘둘리면서 원전 적기 건설의 ‘골든타임’만 놓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추가 원전 건설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제12차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최근 “11차 전기본이 제시한 2038년 원전 비중 35%를 2050년까지 유지하려면 대형 원전 20기와 SMR 12기를 추가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11차 전기본을 넘어서는 추가 원전 건설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어느 수준의 원전 비중이 우리 에너지 믹스에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12차 전기본에서 열어두고 논의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기후부는 “이번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 과제를 포함해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과 절차를 통해 국민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겠다”며 “12차 전기본 수립 과정에서 원전·재생에너지·수요관리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설아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