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왼쪽부터)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연구형 모델,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
[더파워 이경호 기자] 자동차주를 바라보는 시장의 눈이 달라지고 있다. 전기차, 하이브리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등 기존 성장 키워드만으로는 최근 주가 흐름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주가를 끌어올린 진짜 동력은 본업이 아니라 로봇이다.
현대차그룹 주요 종목의 시가총액과 밸류에이션은 올해 들어 큰 폭으로 재평가됐다. 그러나 이익 전망치가 함께 뛴 것은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 추정치가 뚜렷하게 상향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가 먼저 움직였고, 그 결과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빠르게 높아졌다. 자동차 산업을 단순 완성차 제조업으로 보던 기존 잣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구간이다.
유안타증권은 자동차 업종에 대해 중립 의견을 유지하면서도, 종목별 선호도 차이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업종 전체를 일괄적으로 비중확대하기보다 로보틱스 사업에서 실제 수혜가 어디로 귀속될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가장 큰 변화는 현대차와 기아의 시가총액 격차다. 두 회사는 같은 그룹 안에서 플랫폼과 기술을 공유하는 완성차 업체지만, 시장은 현대차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있다. 현대차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기아 대비 80% 이상의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 현대차가 기아 대비 받아왔던 프리미엄 범위를 크게 넘어선 수준이다.
이 괴리는 현대차가 단순 완성차 업체를 넘어 신사업의 컨트롤타워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로봇, 수소, UAM, 전기차, 소프트웨어 등 그룹의 미래 기술 사업에서 현대차가 의사결정과 투자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연구개발 지출 차이도 이를 뒷받침한다. 양사는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연구개발 관련 지출 규모의 차이는 지난해 기준 약 1조8000억원까지 확대됐다. 특히 현대차는 단순 비용 처리보다 무형자산으로 자산화되는 비중이 더 높다. 이는 미래 사업에 활용될 기술과 플랫폼, 지식재산을 현대차가 더 많이 축적해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이런 투자가 비용 부담으로 인식됐다. 신사업은 당장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고, 무형자산 상각비는 손익에 부담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보틱스가 자동차 업종의 새로운 밸류에이션 축으로 떠오르자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의 비용 부담이 이제는 프리미엄 요인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앞세우고 있다. 시장이 현대차그룹을 로봇 산업의 잠재적 주도자로 보기 시작하면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그룹 핵심 종목의 주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다만 로봇 기대감이 곧바로 자동차 업종 전체의 수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휴머노이드 조기 도입은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초기 비용 부담이 될 수 있다. 공급 단가가 높은 시기에 로봇을 먼저 도입하면 향후 가격 하락에 따른 자산가치 훼손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 생산성 개선 효과가 검증되기 전까지는 감가상각 부담이 먼저 반영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가 완성차 생산 현장에 보편화된다면 비용 절감 효과는 특정 기업보다 산업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로봇을 먼저 구매한 업체가 영구적인 경쟁우위를 갖기보다는, 공급 단가가 내려간 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함께 도입하면서 전체 산업의 원가 구조가 낮아지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현대모비스의 의미가 달라진다. 현대차와 기아가 로봇을 구매하는 수요자라면, 현대모비스는 로봇 핵심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다. 휴머노이드가 범용 생산설비이자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성장할 경우, 핵심 부품 공급자는 단순 자동차 부품사를 넘어 로보틱스 하드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재평가될 수 있다.
유안타증권이 자동차 업종 최선호주를 현대모비스 단독으로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현대모비스는 기존 자동차 부품 사업에서는 현대차·기아라는 캡티브 고객 의존도가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로봇 산업이 성장하면 이 캡티브 구조가 오히려 초기 수요와 기술 검증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룹 내 로봇 도입이 먼저 이뤄지고, 이후 외부 수요로 확장될 경우 현대모비스의 역할은 커질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구조와 향후 기업공개 가능성도 자동차주 재평가의 변수다. 유안타증권은 소프트뱅크의 풋옵션 행사 이후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율이 100%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후 추가 유상증자와 기업공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제3자의 유상증자 참여 여부가 중요하다. 그동안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가치는 현대차그룹 내부 유상증자를 통해 높아진 측면이 있다. 외부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기업공개 이전 공정가치를 시장에서 검증받는 효과가 생긴다. 이는 향후 IPO 과정에서 밸류에이션 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기대가 커질수록 리스크도 함께 커진다. 주가 상승이 이익 개선이 아니라 로보틱스 기대감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일정이나 유상증자, 외부 투자 유치, 휴머노이드 양산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자동차주 밸류에이션도 흔들릴 수 있다. 로봇이 주가를 끌어올린 만큼, 주가 하락 요인 역시 로봇에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에 대해서는 중립 의견이 제시됐다. 목표주가는 69만원으로 상향됐지만, 이미 주가가 로보틱스 기대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는 점에서 추가 상승 여력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반면 현대모비스는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87만원이 제시됐다. 로봇 사업에서 수요자이자 공급자라는 이중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요인으로 꼽혔다.
자동차 산업의 밸류에이션 공식은 바뀌고 있다. 판매대수, 마진, 환율, 전기차 점유율만 보던 시장은 이제 로봇과 하드웨어 플랫폼, 그룹 내 신사업 지배력까지 함께 보기 시작했다. 완성차 본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자동차주 주가에 들어온 것이다.
문제는 누가 진짜 수혜자인가다. 로봇을 사는 기업인지, 로봇의 가치를 지배하는 기업인지, 아니면 로봇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인지에 따라 주가의 정당성은 달라진다. 올해 자동차주 랠리는 그 질문에 대한 시장의 첫 번째 답이다.
로봇이 들어올린 자동차주의 몸값은 이제 검증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기대감이 실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밸류에이션 합리화에 그칠지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다음 행보와 현대모비스의 부품 공급 역할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