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견 ‘매수’ 유지·목표가 64만→73만원 상향
HM17321 최대 3조1892억원 기술수출…선급금만 2629억원
파이프라인 가치 3.16조→4.27조…HM17321 평가액 1조1615억원으로 확대
[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미약품이 로슈 그룹에 기술수출한 비만 치료 후보물질 HM17321의 가치가 1조원 이상으로 재평가됐다.
사람에서 약효를 확인하는 임상적 개념증명(PoC) 이전 단계임에도 총 계약 규모가 3조원을 넘어선 데다 로슈가 자체 보유한 GLP-1/GIP·아밀린 계열 비만 신약과 병용할 수 있는 차별화 물질을 확보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래에셋증권은 25일 한미약품에 대해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목표주가를 기존 64만원에서 73만원으로 14.1% 상향했다. 지난 24일 종가 54만원과 비교하면 상승 여력은 35.2%다.
목표주가 상향의 핵심은 HM17321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한미약품의 영업가치를 약 5조2295억원으로 유지하면서 파이프라인 가치를 기존 3조1630억원에서 4조2653억원으로 높였다.
이 가운데 HM17321의 위험조정순현재가치(rNPV)는 기존 1093억원에서 1조1615억원으로 10배 이상 높아졌다.
한미약품은 지난 24일 HM17321의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제조·상업화 권리를 로슈 그룹 자회사 제넨텍에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최대 23억500만달러, 약 3조1892억원이다. 계약금만 1억9000만달러, 약 2629억원이며 임상개발과 허가, 상업화 단계에 따라 최대 21억1500만달러, 약 2조9263억원의 마일스톤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상업화 이후 매출에 연동한 로열티는 별도다.
임상 초기 자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계약 조건은 이례적으로 크다는 평가다. HM17321은 현재 미국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단회용량상승시험(SAD)을 마치고 다회용량상승시험(MAD)에 들어간 상태다. MAD 종료는 2027년 3월로 예상되며 이후 임상 2상부터는 로슈가 개발을 주도할 전망이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Human PoC 발표 전 임상 1상 단계 에셋임에도 전체 계약 규모가 3.2조원, 업프론트가 2600억원을 상회한다는 점에서 서프라이즈"라고 평가했다.
HM17321이 기존 비만 치료제와 다른 점은 식욕이 아니라 근육과 에너지 소비에 작용한다는 데 있다.
HM17321은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장기지속형 UCN2 유사체다. 주 1회 투여를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현재 비만 치료 시장을 주도하는 GLP-1 계열이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을 조절해 체중을 줄이는 방식이라면 HM17321은 근육 성장과 에너지 소비를 높이고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방식이다.
GLP-1 치료제의 약점으로 꼽혀온 근손실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GLP-1 계열 치료 과정에서는 체중 감량분 가운데 일정 부분이 지방이 아닌 제지방 감소로 나타날 수 있어 최근 비만 치료 시장에서는 단순 감량률을 넘어 근육을 얼마나 보존하느냐가 새로운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HM17321의 비임상 결과도 이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비만 붉은털원숭이에 13주간 주 1회 HM17321을 투여한 시험에서는 체중이 25% 이상 줄었고 지방량은 70% 이상 감소했다. 반면 제지방량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비만 마우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HM17321 투여군은 대조군보다 체중이 11.3%, 지방량이 33.6% 감소하면서 제지방량은 11.9% 증가했다.
같은 시험에서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은 체중이 18.2% 감소했지만 제지방량도 6.3% 줄었다. 체중 감량의 절대 폭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컸지만 HM17321은 지방을 줄이면서 근육을 늘리는 체성분 변화가 확인된 셈이다.
병용 가능성도 기술수출의 가치를 높인 배경으로 꼽힌다.
세마글루타이드를 먼저 투여한 뒤 체중 감소가 정체된 비만 마우스에 HM17321을 추가하자 체중과 지방량이 다시 감소했다. 세마글루타이드에서 HM17321로 치료제를 바꾼 시험에서는 지방 감량을 유지하면서 제지방량이 증가했다.
티르제파타이드와의 병용에서도 추가적인 지방 감소와 제지방 보존 효과가 확인됐다.
아밀린 계열과의 조합에서는 지방 감소 폭이 더 커졌다. 카그릴린타이드·페트렐린타이드·엘로랄린타이드 등 아밀린 유사체에 HM17321을 더한 비임상 시험에서 지방량 감소 폭은 45.4~56.5%까지 확대됐고 제지방량은 17.9~22.1% 증가했다.
로슈가 HM17321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배경도 자체 비만 파이프라인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로슈는 현재 GLP-1/GIP 이중작용제 에니세파타이드, 아밀린 계열 페트렐린타이드, 경구용 GLP-1 저분자 치료제 CT-996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GLP-1/GIP와 아밀린은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도 이미 상업화했거나 후기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영역이다. 후발주자인 로슈가 시장 선두 업체와 차별화하려면 기존 계열과 다른 새로운 작용기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HM17321은 UCN2 계열 가운데 개발 단계가 가장 앞선 후보물질로 평가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로슈가 HM17321을 단독 치료제로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에니세파타이드 또는 페트렐린타이드와 고정용량복합제(FDC)로 개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로슈가 이미 자체 후기 임상 자산인 페트렐린타이드와 HM17321의 비임상 병용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실제 복합제 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기존 근육 보존 후보물질을 대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로슈는 마이오스타틴 항체 에무그로바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경쟁사인 릴리의 젭바운드와 병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항체와 펩타이드의 투여 특성이 달라 하나의 고정용량복합제로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반면 에니세파타이드와 페트렐린타이드, HM17321은 모두 펩타이드 기반이다. 향후 2제 또는 3제 복합제를 개발할 경우 제형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기술수출 계약을 반영해 HM17321 가치 산정 기준도 대폭 수정했다.
기존에는 적용 시장을 ‘비만을 동반한 근감소’로 제한했지만 앞으로는 전체 비만 시장을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임상 성공확률도 기존 10%에서 20%로 높였다.
최대 21억1500만달러의 마일스톤 가운데 60%를 수령하는 가정도 새롭게 반영했다. HM17321에 한미약품의 LAPSCOVERY 기술이 적용되지 않아 기술료가 한미사이언스와 배분되지 않고 한미약품에 100% 귀속된다는 점도 가치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출시 시점은 2032년, 출시 8년 차 비만 시장 점유율은 5%, 로열티율은 13%, 제조수익은 8%를 가정했다. 이를 토대로 산출한 HM17321의 rNPV가 1조1615억원이다.
한미약품이 보유한 다른 비만·대사질환 파이프라인도 추가적인 재평가 변수다.
GLP-1·GIP·글루카곤 삼중작용제 HM15275와 마이오스타틴 계열 HM500197, 글루카곤 기반 HM15136 등의 추가 기술수출 가능성이 남아 있다.
국내에서는 GLP-1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허가와 출시도 예정돼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과체중·비만 치료제 시장이 지난해 8205억원에서 올해 1조5015억원, 2030년에는 2조4661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국내 매출은 출시 초기 150억원에서 2027년 1280억원, 2028년 1934억원, 2030년 3699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머크에 기술수출된 에피노페그듀타이드의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임상 2b상 데이터와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의 MASH 임상 2b상 진행 상황도 향후 파이프라인 가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본업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한미약품의 연결 매출액을 1조6740억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8.1% 증가하는 규모다.
영업이익은 2930억원으로 13.7% 늘고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6.7%에서 올해 17.5%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배주주순이익은 1930억원으로 13.6% 증가할 전망이다.
2027년에는 매출액 1조7570억원, 영업이익 29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2028년에는 매출 1조8980억원, 영업이익 3150억원으로 다시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35.9배로 낮지 않지만 2027년 30.2배, 2028년 27.1배로 내려갈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한미약품의 추가 재평가 여부는 로슈가 HM17321을 얼마나 빠르게 다음 임상으로 끌고 가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임상 1상 단계에서 이미 2600억원이 넘는 계약금을 확보한 만큼 향후 사람에서 체지방 감소와 근육 보존 효과가 확인되면 파이프라인 가치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김 연구원은 "로슈가 비만 시장에서 릴리와 노보 대비 차별화 카드로 HM17321을 도입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로슈의 임상 진전과 마일스톤 유입에 따라 파이프라인 가치는 점진적으로 추가 상향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