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산림 수백 헥타르를 집어삼켰다. 이번 산불로 산림 4만8천150㏊ 규모가 피해 영향에 놓였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 상황이다.
산림청과 소방당국은 진화 헬기와 인력을 투입하며 진화작업을 벌였고, 인근 주민 수백 명이 대피하는 사태로 번졌다.
이번 산불 사태로 이재민 3만3천여명이 발생했다. 이중 아직 귀가하지 못한 주민은 2천407세대·8천78명으로 파악됐다. 시설물 피해도 계속 늘어나 주택과 농업시설 등 3천481곳이 산불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의성 산불’은 지난 22일 성묘객 실화, 즉 성묘객의 실수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성묘객은 산에서 쓰레기를 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3월, 산림은 건조해지고 바람은 거세진다. 산불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의 야산과 캠핑장에는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백패커들은 고지대에서 조리용 버너를 켜고, 캠핑족은 불멍을 즐기며 장작을 태운다. 이 모든 ‘화기 사용’이 산불 위험과 맞닿아 있음에도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백패킹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뜨거운 아웃도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배낭 하나에 텐트와 조리도구를 챙겨 인적 드문 산속에서 야영하는 문화는 도심을 떠나 자연을 찾는 이들에게 매력적이다. 그러나 '비박(비공식 야영)'이라는 특성상 산림청의 감시나 지자체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백패커 이 모 씨(41)는 최근 강원도 고지대에서 야영을 했다며 “눈이 조금 쌓여 있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 조리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작은 쓰지 않고, 가스버너(리엑터)만 사용한다"고 덧붙였지만, 전문가들은 작은 불씨 하나가 낙엽층을 타고 번지는 데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고 경고한다.
특히 의성 산불처럼 건조주의보와 강풍이 겹치는 시기에는, 인위적인 불씨 하나가 대형 산불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산림청은 전체 산불 원인 중 상당수가 ‘입산자 부주의’에 의한 실화라고 설명하며, 화기 사용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한편, 공식 캠핑장에서는 불멍이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캠핑 커뮤니티에는 “연기 안 나는 장작 추천”, “불멍하기 좋은 캠핑장” 등의 게시글이 연일 올라온다. 하지만 장작 화로 사용은 제대로 된 소화 조치(방염포·개인 소화기)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고, 일부 캠퍼들은 숲에서 직접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태우기도 한다.
경기도 한 사설 캠핑장 운영자는 “불멍은 고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요소 중 하나지만, 건조한 날에는 화재 위험이 크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소화기나 물통 등을 비치하지만 100% 안전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규제의 한계… 결국 중요한 건 ‘의식’
산림청은 매년 봄철과 가을철 중심으로 ‘산불조심기간’을 운영하며, 지자체별로 세부 통제 기간을 정해 산행 제한 및 화기 사용 금지 조치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야간 비박, 사설 캠핑장, 산지 비공식 명소 등은 감시가 어려운 ‘회색지대’다. 일부 지역에서는 드론이나 열화상 장비를 이용한 산불 감시 체계를 운용하고 있지만, 산악 지형이 넓고 접근이 어려운 지역은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결국 해법은 이용자들의 자율적인 안전의식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야외활동자 스스로가 불 사용을 절제하고, 특히 불멍이나 화기 조리 등은 상황에 따라 생략할 줄 아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의성 산불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라며 “자연을 누릴 권리는 있지만,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의 피해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 자연을 위한 ‘낭만의 절제’, 지금 필요하다
캠핑과 백패킹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사랑의 방식이 잘못되면, 되려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의성 산불처럼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 없는 백패킹', '책임 있는 캠핑'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요구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산속에서 작은 버너에 불을 붙이고, 누군가는 장작더미 앞에 앉아 불멍을 즐기고 있다. 낭만은 책임 위에서 완성된다.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캠핑 문화,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