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건설 부진·정국 불안 삼중악재…“추경 신중, 금리 인하는 필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불과 석 달 전 내놨던 수치를 절반으로 낮춘 것으로, 국내외 주요 기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국책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0%대 성장률 전망을 제시한 것이어서 한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KDI는 ‘2025년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성장률 하향의 주요 배경으로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수출 둔화 ▲소비심리 위축 및 건설 부진 등 내수 약화를 지목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관세 인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본격화됐고, 국내에서는 정국 불안으로 소비 회복이 더디며, 건설업은 공정 지연 등으로 부진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 수출·건설 ‘이중 침체’…경기둔화 본격화
올해 상품 수출은 미국 관세 인상의 영향으로 –0.4% 역성장이 예상된다. 지난 2월 KDI는 1.5% 증가를 전망했지만, 관세 충격이 현실화하면서 수출 전망을 급격히 낮췄다. 건설투자 또한 –4.2%로, 지난해(–3.0%)보다 감소 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수요 회복에도 설비투자는 1.7%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소비 역시 1.1% 증가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이며, 취업자 증가폭도 지난해 16만 명에서 올해 9만 명으로 크게 줄 전망이다.
◆ “상호관세 현실화 땐 더 악화될 것”…대내외 변수 주목
KDI는 이번 전망이 미국의 품목별 관세는 유지되고, 상호관세는 유예되는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고 25%의 높은 관세가 한국 수출품에 적용될 경우, 성장률이 0.8%보다도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김지연 KDI 전망총괄은 “관세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보복 관세까지 확산된다면 한국 경제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금리 인하 필요하지만 추경은 신중해야"
KDI는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정책은 완화적 기조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 근원물가는 1.8%로 낮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반면,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폈다. 김지연 연구위원은 “이미 큰 폭의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며 “세입 여건 악화와 국민연금 지급보장 등 제도 변화에 대비해 정부 지출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실장도 “급격한 경기 악화가 아니라면 추가 추경보다는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국내외 성장률 전망과의 비교…KDI가 가장 낮아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살펴보면, KDI가 제시한 0.8%가 가장 낮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에서 1.8% 성장을 전망했고, 한국은행은 2월 발표에서 1.5%를 제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역시 1.5%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2.0%에서 4월 1.0%로 절반 하향 조정했다.
특히 민간 투자기관들은 KDI와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 등 글로벌 투자은행 8곳의 평균 전망치는 4월 말 기준 0.8%로, KDI와 동일한 수준이다.
이처럼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국책연구기관과 민간금융권은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 내년엔 1.6% 회복 예상…"기저효과 작용할 것"
KDI는 내년에는 성장률이 1.6%로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올해의 낮은 기저효과와 내수 회복 흐름을 반영한 수치로, KDI가 제시한 잠재성장률 수준과 유사하다.
정 실장은 “수출 회복이 지연되겠지만 내수는 점진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며 “내년은 침체에서 일정 수준 반등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