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가 만화에 미친 영향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출판만화의 시대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박인하 부회장은 출판만화의 시대에는 '매체를 매개로 생태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매체를 통해 독자와 작품이, 작가와 독자가 만났다는 의미다. 여기서 매체는 90년대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나 '소년 챔프', '윙크' 등을 말한다. '매체를 통해 매개'한다는 말은 독자들이 어떤 매체에서 만화를 접하느냐에 따라서 기대지평을 결정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거칠게 예를 들면, '윙크'를 볼 때는 순정만화를, '아이큐 점프'에서는 <드래곤볼>을 비롯한 소년 만화를 접하며 잡지가 표방하는 바를 기대한다는 말이다.
매체는 작품 이야기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출판만화 작가는 작품을 페이지와 칸에 담아 독자에게 전했다. 독자는 잡지 안에서 종이를 넘기며 만화를 읽었다. 출판만화의 디스플레이는 A4 2장 넓이 종이다. 페이지와 칸은 고정돼있고, 작가는 시각정보를 의도적으로 배치해 독자의 시선을 유도한다.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내용을 압축하거나 복선을 깔아두는 전략이 가능했다. 잘 연출한 만화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독자들이 시선이 움직인 작품이었다. 웹툰의 시대에서도 이 전략이 통용됐을까.
웹툰의 시대에서 작품을 비추는 디스플레이는 '스크린'이다.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페이지와 칸에서 스크린으로 흐름이 넘어왔다. 출판만화는 종이에, 웹툰은 스크린에 담는다. 디스플레이의 변화는 주요했다. 작품을 만드는 목적과 형식, 독서방법을 바꿨다. 박 부회장은 만화가이자 비평가 스콧 맥클라우드가 저서 <만화의 미래>에서 제시한 '무한 캔버스(Infinite Canvas)'로 설명을 덧붙였다. 무한 캔버스는 작품을 길이나 넓이 제한 없이 X,Y,Z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다. 박 부회장은 "출판만화에서는 고정돼 있는 공간에 시각적인 흐름을 제어하면서 만화를 독해했다면, 온라인 기반 무한 캠퍼스에서는 만화가 계속 독해되도록 하자는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웹툰의 '세로스크롤' 방식은 고민의 결과였다.
계속 또는 무한히 만화를 읽는 환경은 곧장 작품 서사구조를 바꿨다. 독자가 어떤 부분을 어떤 디스플레이에서 어떤 속도로 스크롤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판만화에서는 독자의 시선을 설계할 수 있었지만, 웹툰에서는 그 작업이 어려웠다.
이미지 확대보기 만화가이자 비평가 스콧 맥클라우드가 저서 〈만화의 미래〉에서 제시한 '무한 캔버스(Infinite Canvas)' (사진=Scott McCloud: Understanding comics 갈무리)
박 부회장은 "시선의 흐름으로 스토리텔링을 끌어갈 수 있는 출판만화의 흐름은 캐릭터가 성장하고 복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독자들이 양해해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웹툰은 캐릭터를 성장시키거나 복선을 깔거나 하는 기존 익숙한 서사방식 보다는 지금 들어온 독자들이 (작가의) 욕망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작품들로 스토리텔링 구조까지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디스플레이 환경의 변화가 독자들의 사용자 경험을 바꾸고, 다시 작품 연출과 서사, 캐릭터를 달라지게 했다.
내일의 웹툰은 어떤 모습일까. 박 부회장은 "어떤 특이점이 오면 변화의 시점과 우리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인공지능(AI)와 빅데이터, MR 기술을 예로 들며 웹툰 생태계가 다시한번 변모할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디스플레이 환경이 변하면서 스토리텔링 구조가 변화했던 것처럼 다시한번 AI기반의 창작과 MR기반의 향유 형태가 되면 스토리텔링 구조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맺었다.